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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발굴한 갈리아식 울타리 유적, 고대 정착 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 제공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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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redit : Hamid Azmoun, Inrap

 

프랑스 북부에 건설 예정인 데이터 센터 단지 부지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약 2,8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울타리 정착지palisaded settlement를 발견했다.[이른바 환호유적]

이 유적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의 농업, 식량 저장, 그리고 가정생활 흔적이 드러났다.

이 발견은 센에마른Seine-et-Marne 지방 푸쥐Fouju에서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reventive Archaeological Research (Inrap) 소속 고고학자들이 Campus IA가 데이터 센터 개발을 위해 지정한 6헥타르 규모 부지를 조사 중이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말기부터 철기 시대를 거쳐 초기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쳐 인간이 반복적으로 거주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러 정착지가 불과 수십 미터 간격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650년 사이 초기 할슈타트 시대Hallstatt period에 해당하는 대규모 정착지다.

3.5헥타르 규모 발굴지 일부에 걸찬 이 정착지는 견고한 목조 울타리로 부분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프랑스 국립고고학연구소(INRAP)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과 규모의 울타리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지역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고고학자들은 정착지 북쪽, 동쪽, 남쪽 경계를 표시하는 세 개 울타리 구역을 확인했다.

각 구역은 곡선 형태로 배열된 30개 이상 기둥 구멍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거주자들이 정착지 경계를 세심하게 계획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여러 개 출입구도 확인했다.

북서쪽 구역에서는 지름이 최소 50cm에 달하는 기둥 구멍이 있는 큰 구덩이 약 10개와 6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구조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동쪽에는 갈매기 모양으로 배열된 기둥 구멍 약 12개가 있는데, 이는 방어 구조물이거나 가축을 관리하고 분류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쪽 출입구는 특히 견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여섯 개로 지탱하는 현관이 이중 울타리 옆에 서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두 차례에 걸친 거주 기간 동안 경계가 재건되거나 변경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울타리를 건설하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다듬고, 계획에 따라 배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목책 부분은 연속적이지 않아 고고학자들은 이 울타리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남쪽 부분에만 해자가 딸려 있는데, 해자와 목책이 동시에 건설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연구자들은 더 효과적인 물리적 장벽을 만들기 위해 수직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를 엮거나 배치했을 가능성을 추측한다.

농업과 일상생활 흔적

울타리 내부에서는 광범위한 농업 생산과 생활 활동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덟 개 큰 구덩이는 원래 토사를 채취하기 위해 파놓은 것으로, 아마도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불규칙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이 구덩이들은 이후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부는 일상생활에서 나온 쓰레기를 담는 구덩이가 되었고, 다른 일부는 농산물을 저장하는 지하 사일로로 사용되다가 결국 다시 쓰레기 ​​구덩이로 사용되었다.

일련의 높이 솟은 곡물 창고는 식량 생산과 저장이 이 정착지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세 개 구조물은 세 개 기둥이 평행하게 두 줄로 세워졌고, 나머지 여섯 개 정사각형 건물은 네 개 기둥 위에 세워졌다.

주로 정착지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위치한 이 건물들은 곡물을 지상에 보관하고 습기와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하 사일로와 함께 이러한 곡물 창고는 농업 생산이 이 유적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음을 시사한다.

이 정착지에서는 음식 조리 흔적도 발견되었다.

동쪽 울타리 안에서 가열된 돌을 사용한 화덕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 화덕은 원형 구덩이에 나무를 태워 맷돌이나 석회석 조각을 달군 형태였다.

이렇게 달군 돌은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근 구조물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이 화덕이 가정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청동기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푸주 유적 발굴은 또한 수 세기에 걸쳐 경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보여준다.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평행하게 놓인 두 개 도랑은 발굴 지역 서쪽과 남서쪽 부분을 구분한다.

그들의 경로는 6개 기둥으로 세운 곡물 창고 중 하나의 흔적을 가로지르는데, 이는 도랑이 다른 활동 단계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랑을 메운 곳에서 발굴된 도기 유물은 이 유적이 라 테네 시대La Tène period 후기, 즉 남쪽 인접 지역에서 이전에 확인된 제2 철기 시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유적은 또한 '슈맹 파레(Chemin Paré)'로 알려진 고대 도로 옆에 위치한다.

이 시골길은 과거 오를레앙Orléans과 멜룬Melun을 거쳐 샤이앙브리Chailly-en-Brie를 연결한 도로 흔적을 따라 이어진다.

고고학자들은 이 도로와 관련된 도랑들을 확인하고 기록했다.

도로변 도랑 중 하나와 나란히 위치한 매장 구덩이도 발굴되었다.

이 구덩이에서는 부장품이 남아 있지 않은 인골이 발견되어 정확한 매장 시기를 알 수 없다.

매장 시기를 밝히기 위해서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 필요할 것이다.

푸주 유적 발견은 고고학자들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공동체들이 어떻게 거주하고 생활했는지에 대한 매우 폭넓은 시각을 제공한다.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목책, 저장 시설, 화덕, 농업 시설 등이 남아 단순히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는지뿐만 아니라 약 3천 년 전 그들이 어떻게 농업과 식량 생산을 조직하고 정착지의 물리적 경계를 설정했는지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처: In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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