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기쁨? 복음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달라

'복음서 이야기 자체가 혼란과 위험을 이야기한다': 한 역사학자가 예수 탄생 당시 세상을 묘사하다
현대 크리스마스 주제인 평화와 기쁨은 고대 유대의 '혼란과 위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늘날 분열된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년 수백만 명이 "고요하고, 모든 것이 밝다"라는 가사가 있는 아름다운 캐럴 '고요한 밤'을 부른다.
우리는 모두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평화와 기쁨을 선포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축제, 가족 모임, 선물 교환에 스며들어 있다.
수많은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별빛 아래 아늑한 마구간에서, 한적한 작은 마을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성가정Holy Family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내가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책, 『소년 예수: 격동의 시대에 유대인으로 자라다the childhood of Jesus, Boy Jesus: Growing up Judaean in Turbulent Times』를 집필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 캐럴은 예수가 태어났을 당시 가족의 실제 상황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서 이야기 자체가 혼란과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유manger"는 사실 당나귀를 위한 악취 나는 사료통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그 안에 누워 있는 것은 밤에 위험한 야생 동물로부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어진 심오한 표징이었다(누가복음 2:12).
이 이야기들을 핵심 요소별로 분석하고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 놓고 보면, 그 위험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헤롯 왕을 생각해 보자. 그는 아무런 소개 없이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며, 독자들은 그가 악당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헤롯은 로마인들이 신뢰하는 유대 지방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로마 기준으로 볼 때 '괜찮은' 통치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예수 가족은 다윗 왕가 후손이며 미래의 통치자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유대 왕족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전체 족보로 시작하는데, 이는 예수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예수 탄생 몇 년 전, 헤롯은 다윗 왕 무덤을 도굴했다.
이 사건은 예수 가족과 그들이 예수에게 들려줄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은 로마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공포와 반란의 시대
다윗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베들레헴에 대한 헤롯의 태도는 더욱 위험하고 복잡해진다.
헤롯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파르티아(로마의 적) 지원을 받는 경쟁 왕에게 쫓겨났다. 이 경쟁 왕은 많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헤롯은 베들레헴 근처에서 그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와 그의 군대는 반격에 나서 공격자들을 학살했다.
로마가 경쟁 왕을 물리치고 헤롯을 복위시킨 후, 그는 베들레헴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지역에 헤로디움Herodium 이라는 승리의 기념비를 세웠다. 지역 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리고 베들레헴은 한적한 마을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 중심부로 물을 공급하는 대규모 수로 건설이 이루어질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
헤롯을 두려워한 예수 가족은 고향을 떠났지만, 처음부터 로마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만이 로마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기록에 따르면, 예수 탄생 직후 로마에 대한 공개적인 반항이 일어났다.
헤롯이 죽자 수천 명이 예루살렘 성전을 점거하고 해방을 요구했다. 헤롯의 아들 아르켈라우스Archelaus는 그들을 학살했다. 이후 여러 유대인 혁명가가 왕위를 찬탈하고 왕국 일부를 점령하려 했으니 갈릴리Galilee도 그중 하나였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바로 이 시기에 요셉은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가족을 데리고 독립된 갈릴리, 나사렛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갈릴리의 독립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루스Varus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은 동맹군과 함께 시리아에서 진군해 인근 도시 세포리스Sepphoris를 파괴하고 수많은 마을을 불태웠으며, 수많은 유대인 반란군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결국 로마군은 반란을 진압했다.
아르켈라우스는 공식적으로 통치자로 즉위한 후 공포 정치를 계속했다.
오늘의 탄생 이야기
역사학자로서 나는 예수와 그의 가족이 로마 지배하 혼란스럽고 불안정하며 고통스러운 사회 환경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싶다.
하지만 관객들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목수의 아들The Carpenter’s Son>을 접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외경apocryphal (성경이 아님)인 <파이디카 이에수Paidika Iesou>(예수의 어린 시절the Childhood of Jesus)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았으며, 후대에 <토마스 유년 복음서The Infancy Gospel of Thomas>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예수가 자신의 놀라운 능력과 운명에 고뇌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예수 사후 100년도 더 지나서 만들어진, 단편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문학 작품이다.
《파이디카》는 어린 예수를 누구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반신반인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조차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당시 사회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던 비유대인,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기적을 행하는 예수는 모든 적을,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죽인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예수와 부딪쳐 어깨를 다치자, 예수는 그 아이를 때려죽인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말한다. "그를 화나게 하는 자들이 죽지 않도록 하려면 그[예수]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마시오."
이러한 이야기는 신의 진노를 절대 거스르면 안 된다는 문제가 있는 사상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 어린 예수는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분노를 보여준다. 게다가 도덕적 기준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 글은 예수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한 행동이 그들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한 유대인이 고발자로 등장하는 것은 몇 줄에 지나지 않는다. 내용 경고가 있어야 한다.
영화 <목수의 아들>에 나오는 예수 탄생 장면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비명 소리와 로마 병사들이 아기들을 불 속에 던지는 끔찍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많은 영화처럼, 그 폭력은 그저 악하고 자의적인 것일 뿐, 유대와 로마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분명 오늘날 분열과 소외가 만연하고, 세상의 억압적인 권력 아래 놓인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예수 탄생과 그의 어린 시절이라는 더 큰 맥락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미국 일부 교회는 이제 이러한 현대적 관련성을 반영해 ICE 구금과 이민자 및 난민 추방을 묘사하는 성탄 장면을 각색하고 있다.
여러모로, 진정한 예수 탄생은 단순한 평화와 기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비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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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텍스트인데 몇 군데 오역이 있을 수 있다. 체크한다 했지만 아래숑숑한 데가 나로선 있다. 혹 이상한 대목은 원문을 참고하셨으면 싶다.
https://theconversation.com/what-world-was-jesus-born-into-a-historian-describes-the-turbulent-times-of-the-real-nativity-268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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