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헬레니즘 제국 최동단 변방 우즈벡서 2,200년 된 그리스 군사 캠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중앙아시아로 진격하면서 박트리아Bactria와 소그디아나Sogdiana는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 그리스어 사용 정치 세계에 편입되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남부 한 언덕에서 고고학자들은 그 국경의 희귀한 흔적, 즉 이전에는 작은 농촌 정착지로 간주된 곳 아래 숨은 단기 헬레니즘 군사 캠프short-term Hellenistic military camp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스칸다르 테파Iskandar Tepa로 알려진 이 유적은 수르한다리야 지방Surkhan Darya Province 셰로보드 지구Sherobod District, 로일라간 계곡Loylagan valley 근처에 위치한다.
계곡 바닥에서 약 20미터 높이 좁은 곶promontory에 자리 잡은 이 언덕은 고대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의 경계 지대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새로운 해석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발표된 연구에서 비롯한다.
이 연구는 카렐 대학교Charles University 라디슬라프 스탄초Ladislav Stančo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얀 키셀라Jan Kysela, 토마시 텐세르Tomáš Tencer, 페테르 밀로Peter Milo, 샤풀라트 샤이둘라예프Shapulat Shaydullaev와 함께 수행했다.

평범한 언덕 아래 숨은 야영지
이스칸다르 테파는 2017년 체코-우즈베키스탄 공동 고고학 연구팀이 처음 발견했다.
초기 발굴 조사에서는 헬레니즘 시대 활동 흔적이 확인되었지만, 유적 내부 구조는 불분명했다.
표면적으로는 군사 시설임을 시사하는 단서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연구팀이 자기탐사 및 지표투과레이더를 사용해 다시 발굴 조사를 진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계측 장비는 언덕 꼭대기를 둘러싼 커다란 타원형 구조물을 드러냈는데, 이는 길이가 거의 400미터에 달하고 면적이 약 1.2헥타르에 이르는 둘레 도랑perimeter ditch이었다.
지상이나 위성 사진에서는 그 지형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지구물리 탐사를 통해서만 그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집중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해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한 발굴 구역에서는 해자 폭이 약 7미터, 깊이가 85센티미터였고, 다른 발굴구에서는 폭이 약 4미터, 깊이가 약 1미터였다.
해자 안쪽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 구멍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목책wooden palisade과 같은 간이 방어 시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유적은 영구적인 도시나 대규모 석조 요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된 임시 거주지 모습에 가깝다.
방어하기 좋은 언덕, 둘러싸인 해자, 목재 방어 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드러난 반면 내부 건축물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건조한 국경 지대의 물 저장 시설
밀폐된 구역 내부에서 연구팀은 땅속에 직접 묻힌 대형 도기 저장 용기(현지에서는 '쿰khums'이라고 함)를 다수 발견했다.
이 항아리들은 이전 발굴 조사에서도 이미 발견되었지만, 지구물리학적 조사를 통해 이러한 매장 유적이 유적 전체에 얼마나 널리 분포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발굴된 여러 항아리 벽이나 바닥에는 흰색 석회질 침전물이 묻어 있었다.
항아리에서 식물 잔해를 회수하려는 시도는 유용한 증거를 얻지 못했고, 연구진은 항아리에 액체, 아마도 물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해석은 주변 지형과도 부합한다.
이스칸다르 테파 정상에는 알려진 샘이나 우물이 없다.
이곳에 주둔한 사람들은 계곡에서 물을 끌어오거나, 빗물을 모으거나, 수로를 이용해야 했을 것이다.
북쪽 경사면을 따라 발견된 선형 구조물은 수로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연구진은 이 수로가 먼 곳에서 정착지로 물을 운반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건조 환경에 위치한 군사 캠프에서 물은 수로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매장된 항아리는 이곳이 일시적인 거주지가 아니라 계획적인 거주지였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박트리아 시대 동전
이 유적 연대는 도기와 금속 유물, 특히 지표 조사에서 발견된 동전을 통해 추정한다.
이에는 디오도투스Diodotus 2세, 에우티데무스Euthydemus 1세, 데메트리우스Demetrius 1세와 같은 그리스-박트리아 Greco-Bactria 왕조 통치자들과 관련된 동전이 포함된다.
주요 거주 시기는 기원전 2세기로 추정되며, 기원전 1세기까지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이스칸다르 테파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그리스-박트리아 왕조는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을 지배했고, 군사 전초기지는 교역로, 계곡, 국경 지대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알렉산더 대왕과의 연관성이 중요해진다.
이 진영이 반드시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곳의 중요성은 그의 정복 이후 등장한 그리스의 군사 및 정치적 지형이 여러 세대에 걸쳐 중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다.

캠프 이후의 묘지
군사 캠프가 문을 닫은 후에도 언덕 위의 의미는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부지 주변에서 실시된 지구물리학적 조사 결과, 주로 동쪽과 서쪽에 집중된 약 90개 타원형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구덩이들을 매장 구덩이로 해석한다.
이 무덤 중 일부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 즉 과도기 또는 월지Yuezhi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매장 활동이 초기 정착지 유적과 겹쳐 보이는데, 이는 버려진 군사 진지가 나중에 공동묘지로 재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재사용은 유적 역사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해준다.
이스칸다르 테파는 한순간에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언덕이던 이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능이 변화했다.
헬레니즘 시대 통제된 점령지에서 후대 공동체 매장지로 사용된 것이다.

중앙아시아 헬레니즘 군사 생활에 대한 드문 통찰
연구진은 이스칸다르 테파를 소그디아나 중부에 위치한 또 다른 고지대 유적인 보이사리 테파Boysari Tepa와 비교한다.
보이사리 테파 역시 유사한 요새 지역이다.
또한 연구진은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알려진 그리스 군사 진지가 종종 자연적으로 방어 가능한 지형, 불규칙하거나 원형의 배치, 해자, 성벽 또는 목책, 그리고 제한적인 영구 건축물을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스칸다르 테파는 이러한 특징을 많이 보여준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점, 타원형 해자, 목책으로 추정되는 구조물, 견고한 건물의 부재, 그리고 임시 또는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는 흔적들은 모두 이곳이 군사 야영지였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유적은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발견은 매우 중요하다.
임시 야영지는 도시, 사원, 요새처럼 눈에 띄는 유적을 남기지 않는다.
얕은 해자는 침식 작용으로 사라질 수 있고, 나무로 된 방어 시설은 없어지며, 저장용 항아리는 계측 장비로 탐지되기 전까지는 땅속에 묻힌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다.
이스칸다르 테파에서는 지구물리학적 탐사를 통해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언덕이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최동단에 위치한 광범위한 군사 지형의 증거로 밝혀졌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유적은 병사들이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 사이의 국경 지대를 어떻게 점령하고, 보급하고, 방어했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Stančo, L., Kysela, J., Tencer, T., Milo, P., & Shaydullaev, S. (2026). Geophysical and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Hellenistic-period settlement Iskandar Tepa in the Bactro-Sogdian borderlands.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 72, Article 105742. https://doi.org/10.1016/j.jasrep.2026.105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