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汉晋 시대 운남의 변경 도시 유적 주제 고성朱提故城

(진타이뉴스金台资讯, 2026년 8월 1일 08시 44분) 약 2천 년 전 한·진汉晋 시대 서남방 변경 도시에서 귀이개와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둥근 머리와 깔끔하고 긴 손잡이가 있는 이 귀이개는 세월 흔적으로 생긴 녹청색 얼룩을 제외하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귀이개와 거의 동일한 형태를 지닌다.
일상생활 흔적이 가득한 이 작은 유물은 운남성云南省 소통시昭通市 주제고성朱提故城 유적에서 발굴되었으며, 한진 시대 서남방 변경 도시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엿보게 한다.
기원전 135년, 한 무제는 주제현朱提县을 설치해 한 왕조가 윈난-구이저우 고원[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확장하는 초기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20여 년 뒤에 익주군益州郡 전신인 뎬츠현[전지현滇池县, 하백소 유지河泊所遗址)을 세웠다.
다시 말해, 주티 고성은 한 왕조가 윈난으로 확장해 나가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주티는 한 왕조 시대 중국 남서부 주요 상업 및 산업 도시였으며, 번영하는 경제와 문화를 자랑했다.
윈난, 쓰촨, 구이저우성[滇、川、黔] 세 성省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실크로드 남아시아 회랑[丝绸之路南亚廊道] 핵심 거점에 자리 잡은 주티는 탁월한 지리적 이점을 누렸다.
또한,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해 최고 품질 구리와 은을 생산했으며, 특히 "주티산[朱提造]" 청동기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자오퉁시립박물관昭通市博物馆 연구원 딩창펀丁长芬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고고학적으로 발굴되거나 기록된 "주티산朱提造"과 "당랑산堂狼造"이라는 명문이 있는 청동기 유물이 118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 37점은 현재까지 남아 전국 12개 성·직할시 박물관과 문화기관에 소장되어 당시 청동기 유물이 널리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청동기 유물들은 서기 64년부터 185년까지 제작된 것으로, 동한 시대에 공식적으로 주조된 청동기 유물 중 유일하게 100년 이상 연대 측정 기록이 남아 있는 유물이다.

딩창펀은 이 시기가 주티 청동 주조 산업 황금기였으며 대량 생산, 정교한 기술, 그리고 백성들의 폭넓은 인기가 특징이었다고 분석한다.
"주티[주제朱提]"라는 지명은 서한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700년 이상 사용했다.
이곳은 제갈량이 남방 원정 당시 진을 친 곳이라 전해지기에,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이 고대 도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제갈량 진영[제갈영诸葛营]"이라고 부른다.
천 년 넘게 잠든 이 고대 도시는 최근에야 그 신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유적은 1980년대 제2차 국가 문물 조사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2017년 체계적인 탐사와 시굴을 거쳐 한-진 시대 주티현(현청 소재지)의 중심지였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2019년에는 국무원이 국가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다.
2022년에는 국가문물국 승인을 받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윈난성 문물고고연구소云南省文物考古研究所와 협력해 주티 고대 도시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연구원인 양용杨勇에 따르면, 약 4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한-진 시대 도시 유적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까지 윈난성에서 발견된 한-진 시대 도시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곳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부터 살펴보겠다. 바로 도시 방어 체계다.
성벽과 해자 흔적이 완전히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서쪽과 남쪽 성문도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성문에는 동일한 형태의 삼방형 망루[三开间门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한-진 시대 현청 소재지에서 발견된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다.
도시 남서쪽에서는 여러 줄로 늘어선 주춧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교적 큰 건물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빽빽하게 놓인 이 주춧돌들은 아마도 기둥식 가옥干栏式房屋과 유사한 구조의 저장 건물 기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중국에서는 습기와 해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상 가옥이 흔하다.
또한, 가장 중요한 증거는 점토 인장 봉니封泥다.
고대에는 대나무와 나무 조각을 묶은 후 매듭에 점토 조각을 붙여 관직 인장을 찍었다.
이는 위조 및 변조를 방지하는 동시에 관직자의 서명 역할을 하여 행정 업무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제공했다.
주티朱提와 건위犍为와 같은 명문이 있는 여러 점토 인장이 주티 고대 도시 유적에서 발굴되어 유적 연대와 성격을 더욱 확증해 준다.
유적 남동쪽, 전하前河 강 근처에서는 대규모 철 제련 작업장 지역이 발굴되었는데, 이에는 철광로 본체, 경사면에 쌓인 소성 점토 슬래그, 그리고 용광로 파이프와 용광로 벽 조각과 같은 생산 설비가 포함된다.
풍부한 지역 광물 자원과 더불어 이 유적은 당시 중국 남서부 중요한 수공예 기지였으며, 특히 금속 제련과 주조에 주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건축 자재와 생활용품도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주제 고성 출토 오수五铢(왼쪽)와 대천오십大泉五十(오른쪽) 동전.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제2서남부고고학팀 제공
권운문卷云纹에 "길양吉羊" 명문이 있는 기와, 오수五铢、대천오십大泉五十、화천货泉 등의 동전, 그리고 도기, 청동, 철, 칠기 등으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은 모두 중원 지역의 유물과 매우 유사한 형태와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
발굴된 유리구슬은 주티와 실크로드 남아시아 지역 간 오랜 기간 활발한 경제·문화 교류를 증명한다.
성벽과 봉니는 고대 중부 왕조의 변경 지역 통치를 보여주며, 대규모 작업장은 중국 남서부 산업의 번영을 반영한다.
하지만 섬세한 귀이개는 역사에 있어 가장 생생한 일화다.
약 2천 년 전, 중국 남서부 지역에는 이미 여유롭게 귀를 청소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고대의 "윈난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 人民日报 》( 2026年08月01日 07 版)
***
정작 귀이개는 도판이 제시되지 않아 다른 아티클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