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이모저모

덴마크에서 발견된 앵글로색슨 시대 "하느님의 어린양" 은화, 그것이 제기하는 역설들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1. 18:22
반응형

덴마크 국립박물관 소장 바이킹 시대 하느님의 어린양 은화. 사진은 박물관 제공이다.

 

1,000여 년 전 바이킹 공격으로부터 신의 보호를 간절히 바라며 주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희귀한 앵글로색슨 시대 "하느님의 어린양Lamb of God" 동전 두 점이 덴마크에서 발견되었다.

아뉴스 데이 페니 Agnus Dei pennies라고도 불리는 이 은화는 덴마크 남부 윌란Jutland 반도 뢰굼클로스터Løgumkloster와 티Thy의 카스트루프Kåstrup 인근에서 금속 탐지기가 발견했으며, 현재 덴마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얼핏 보면 각각의 동전은 마모된 작은 은 조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새긴 그림은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등장하는 왕의 초상 대신, 이 동전에는 중세 시대 가장 잘 알려진 기독교 상징 중 하나인 '하느님의 어린양'(아뉴스 데이Agnus Dei)이 있다.

바이킹 시대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에 통치한 영국의 애설레드King Æthelred 2세에게 이 동전은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는 위기에 대한 정치적, 정신적 대응이었다.

이 동전들은 영국이 바이킹의 반복적인 침략으로 심각한 압박을 받던 1009년경에 주조되었다.

덴마크 국립 박물관에 따르면, 애설레드 왕은 교회와 왕국 모두를 동원하여 이 위협에 맞서 싸우려 했다.

금식, 참회, 기도, 그리고 눈길을 사로잡는 새로운 동전 디자인은 모두 같은 방어 노력 일환이었다.

그 의도는 분명했다.

군사적 저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 신성한 이미지를 통해 왕국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바이킹의 사후 세계를 담은 기독교 동전

아이러니는 너무나도 절묘하다.

바이킹으로부터 영국을 방어하고자 만든 동전이 오히려 바이킹들에게 빼앗기고, 소중히 여겨지고, 심지어 착용되었을 가능성까지 있다.

이른바 '아뉴스 데이(Agnus Dei)' 페니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개 정도만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에서는 극히 드물게 발견되었고, 대부분 스칸디나비아와 발트해 연안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종종 작은 고리가 달린 것으로 보아 펜던트나 부적 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이 동전들은 단순히 잃어버린 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선별하고, 변형하고, 전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킹에게 기독교적 이미지는 위신, 이국적인 가치, 영적인 의미, 혹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했을 수 있다.

약탈자로부터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든 이 동전이 북해를 건너, 바로 그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물질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박물관 감리사인 기테 타르노우 잉바르손Gitte Tarnow Ingvardson은 이 발견을 희귀하면서도 역설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 동전이 영국 왕과 기독교에서 덴마크 바이킹 통치자, 덴마크 화폐의 발흥, 나아가 덴마크 국가 형성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열어준다고 지적했다.

하느님의 어린양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

아뉴스 데이 페니는 당시의 일반적인 영국 동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동시대 동전은 한쪽 면에 왕의 초상이, 다른 쪽 면에는 십자가나 명문이 새겨졌다.

그러나 이 희귀한 동전들은 왕실 초상 대신 신성한 상징을 사용했다.

한쪽 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하느님의 어린양이 묘사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어린양은 그리스 문자 알파와 오메가가 새겨진 석판 위에 서 있는데, 이는 각각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다른 쪽 면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둘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성령을 상징한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은으로 새긴 신학이었다.

이 디자인은 중세 왕권, 전쟁, 그리고 종교가 깊이 연결된 시대를 반영한다.

애설레드 왕의 잉글랜드는 침략뿐 아니라 장기간의 군사적 압박, 조공 요구,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전은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동전은 공적인 메시지, 기도, 그리고 왕권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희귀한 앵글로색슨 시대의 아뉴스 데이(Agnus Dei) 동전의 앞면과 뒷면: 앞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어린 양이 알파와 오메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뒷면에는 성령의 비둘기가 새겨 있어 동전에 담긴 강렬한 기독교적 상징성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Søren Greve 및 John Engedahl Nissen. 덴마크 국립 박물관



애설레드 2세 시대와 바이킹의 위협

후대에 "준비되지 않은 자(The Unready)"라는 별명으로 기억되는 애설레드 2세는 978년부터 1016년까지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잉글랜드 공격이 다시 활발해진 시기와 겹쳤는데, 특히 10세기 후반과 11세기 초에는 덴마크의 대규모 침략이 있었다.

1009년은 매우 긴장된 해였다.

바이킹 군대가 왕국을 반복적으로 위협하자, 잉글랜드 통치자들은 군사 행동, 세금 징수, 외교, 조공 지불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아뉴스 데이 동전은 짧은 기간 동안만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 동전의 희소성은 디자인이 포기되기 전에 소량만 생산되었음을 시사한다.

계속되는 바이킹 공격이 그 이유일 수 있다.

신성한 동전은 희망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함선이나 군대, 정치적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몇 년 후, 영국은 스칸디나비아 세력 다툼에 더욱 깊이 휘말리게 된다.

덴마크의 스베인 포크비어드Sweyn Forkbeard는 1013년 잠시 영국 왕이 되었고, 그의 아들 크누트Cnut는 이후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를 아우르는 북해 제국을 통치했다.

덴마크에서 발견된 두 개 동전은 이러한 격동, 폭력, 교류, 그리고 문화적 차용으로 점철한 거대한 시대의 산물이다.

영국 은화가 덴마크 화폐 제도 형성에 미친 영향

이번 발견은 바이킹 시대 덴마크의 주요 경제적 변혁을 보여준다.

바이킹 시대 대부분 지역에서 은은 무게 단위로 유통되었다. 사

람들은 은괴, 은 조각, 그리고 외국 동전을 사용하며 교역 과정에서 금속을 자르고 무게를 측정했다.

영국 동전은 이러한 관습을 바꾸어 놓았다.

무역, 조공, 그리고 약탈을 통해 영국에서 가져온 막대한 양의 은은 스칸디나비아 엘리트들에게 더욱 체계적인 화폐 제도의 이점을 보여주었다.

덴마크의 바이킹 왕들은 영국 모델을 채택하고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국립 박물관은 덴마크 화폐 제도가 영국의 잘 정돈된 화폐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아뉴스 데이(Agnus Dei) 이미지조차도 덴마크에서 후대에 계승되었다.

크누트 대왕Cnut the Great과 그의 아들 하르타크누트Harthacnut는 관련 모티프를 새긴 동전을 주조했고, 스벤 에스트리드센Svend Estridsen 또한 유사한 디자인을 사용했다.

이러한 계승은 스벤 에스트리드센이 덴마크 교회 조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중요하다.

즉, 이 두 개 작은 동전은 단순히 바이킹 침략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사상의 전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적 이미지, 왕권, 그리고 화폐 제도가 북해를 건너 함께 이동한 것이다.

넓은 역사적 맥락을 지닌 작은 동전

뢰굼클로스터와 티에서 새롭게 발견된 이 두 개 동전은 단 몇 그램 은에 놀라운 역사적 흐름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동전들은 압박받던 영국 왕, 신의 도움을 구하던 기독교 왕국, 외국의 부를 고국으로 가져온 바이킹 약탈자, 그리고 후대에 수입된 모델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덴마크 통치자들을 이야기한다.

바이킹을 막기 위해 만든 동전이 바이킹 세계 일부가 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발견을 그토록 강력하게 만드는 이유다.

단순히 희귀함을 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역사가 종종 모순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출처 : 덴마크 국립 박물관

표지 이미지 제공: Søren Greve 및 John Engedahl Nissen. 덴마크 국립 박물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