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가 재현한 전설적인 '울프베르트Ulfberht' 바이킹 검

노래, 희곡, TV 시리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불멸의 존재로 자리매김한 바이킹 시대는 수 세기 전의 약탈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유산을 남겼다.
바이킹의 활동은 약탈에서 탐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그중에서도 울프베르트 검Ulfberht sword은 오랫동안 전설로 남았다.
노련한 바이킹 전사의 손에 이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적은 누구나 그것이 단순한 지위의 상징이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 검에 사용된 강철 특성 덕분에 다른 검에 비해 압도적인 내구성을 자랑하며 전투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검은 대장장이들이 재료 과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습지 철bog iron, 제련smelting, 패턴 용접 기술pattern-welding techniques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부러진 울프베르트 검의 미스터리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Neues Museum에는 울프베르트 상감 세공을 한 검을 비롯해 바이킹 무기 유물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과 애호가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처럼 전설적인 검 중 일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조각난 채로만 남아 있는데, 이는 갑옷도 베어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거의 부러지지 않는 무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왜 이 조각난 금속 파편들이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진품 울프베르트 검은 특수 처리한 강철로 특별한 공법을 거쳐 제작했으며, 최고의 유연성을 갖도록 만들어 전투에서 절대 부러지지 않았다.
바이킹 전사가 전투에서 쓰러지더라도 이 검을 든 채로 쓰러진다 해도 검날은 부러지지 않았다.
전사의 영혼이 산 자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죽은 다음 검은 가열해 구부려야 했다.[이른바 훼기毁器를 말한다.]
따라서 울프베르트라는 이름을 새긴 부러진 검에 대한 설명은 단 하나뿐이다.
조각난 금속 파편들은 애초에 진품 울프베르트 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울프베르트의 전설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방패벽을 세운 긴 검을 든 바이킹의 상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바이킹은 실제로 도끼나 창으로 싸웠다.
가장 부유한 군벌만이 궁극의 검인 울프베르트를 소유할 수 있었다.
서기 800년부터 1000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생산된 이 치명적인 검은 전장 기술의 정점으로 여겨졌으며, 제작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었다.
릭 퍼러Rick Furrer의 복원 작업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수백 년 전 고유한 제작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 바이킹 검의 금속학적 특징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스콘신 주 도어 카운티 포지웍스Door County Forgeworks의 대장장이 릭 퍼러가 고대 금속 제련 과정을 재현하기 위해 나섰을 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고고학적 증거와 현대 화학 기술을 접목하면서 모든 미묘한 차이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친 그의 여정은 2012년 PBS 노바Nova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그 결과 그 어떤 현대 대장장이도 이전까지 이루지 못한 고대와 중세 시대 이후 가장 위력적인 검으로 손꼽히는 바이킹 검의 충실한 복제품을 완성했다.

철이 어떻게 전설적인 강철이 되었는가
철광석을 강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녹여서 원래 암석 잔여물에서 진짜 철을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철은 본래 무르기 때문에 압력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원소를 첨가해야 한다.
그 원소가 바로 탄소인데, 숯이나 석탄을 통해 첨가한다.
탄소는 단조 공정의 고온에서 철과 결합하여 금속을 강철로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울프베르트가 다른 검과 다른 이유
중세 유럽의 검은 탄소 함량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불순물, 즉 슬래그가 많이 함유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순물은 철을 더 쉽게 부서지게 만들어 강도를 약화했다.
중세 시대 화력은 철을 액화시켜 슬래그와 분리할 만큼 충분히 뜨겁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강철은 사실상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금속을 두드리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울프베르트 금속을 분석한 결과 슬래그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놀랍게도 당시 일반적인 중세 강철보다 탄소 함량이 세 배나 높았다.
비록 울프베르트 생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화학 분석을 통해 현대의 복제 과정을 통해 그 진실을 밝힐 수 있다.

시대를 수 세기 앞서간 강철 단조 기술Forging Steel
유럽에서 도가니를 이용한 강철 생산crucible steel production 증거는 마지막 울프베르트 검이 제작된 지 수백 년 후에야 나타나며, 그 방법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불을 피울 때 숯 대신 탄화한 뼈 조각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망치가 부딪힐 때마다 강철에는 뼈의 주인인 동물이나 조상의 영적인 힘이 서서히 스며들었을 것이다.
칼날은 하나의 강철 덩어리를 여러 시간 동안 두드려 모양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 원자는 수지상 결정 구조를 이루고, 그 경계는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어 완벽한 형태를 만들기가 어렵다.
형태가 완성된 검은 가열한 후 급속 냉각시켜 금속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숫돌로 연마해 원자 구조를 강화하고, 에칭산etching acid으로 처리해 상감 세공을 드러냈다.
바이킹 전설 속 프랑크족 이름
울프베르트Ulfberht라는 이름의 기원은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울프베르트는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에 나오는 이름처럼 들리지만, 스칸디나비아어가 아니라 프랑크어Frankish 이름이다.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부터 그의 불운한 손자 샤를 2세(대머리 샤를Charles the Bald)에 이르기까지 프랑크족은 중세 유럽의 판도를 바꾼 수많은 바이킹 침략에 맞서 싸워야 했다.
샤를마뉴 대제 치하 프랑크 왕국은 오늘날 덴마크 지역을 다스린 구드프레드Gudfred 왕의 왕국과 같은 바이킹 왕국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전설적인 검에 담긴 신성한 이름
검에 이름을 새기는 기법은 죽은 자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보통 U 앞에 십자가, h와 t 사이에도 십자가를 새겼는데, 이는 수도원장과 같은 종교적 인물이나 수도원과 같은 장소를 기리는 의미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이교도였던 바이킹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론으로는 바이킹 전사들이 약탈을 위해 이동하던 중 오늘날의 독일 지역을 지나갔고, 그중 부유한 사람들이 프랑크족 장인에게서 울프베르트 검을 구입했다는 설이 있다.
일부 연구자는 이 검이 바이킹이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크족 전사들에게서 몸값이나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울프베르트 검의 유산
고대 무기사(History of Antique Arms)에 발표된 연구에서 고고학자 앤 포이어바흐Ann Feuerbach는 서기 935년경 영국 왕 아텔스탄Athelstan을 위해 울프베르트 검이 제작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아텔스탄 왕의 조카들(그리고 다른 지지자들)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울프베르트 검을 선물 받았다.
이는 이 치명적인 검을 휘두른 사람이 이교도만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이 검은 기독교인, 이교도, 심지어 고대 신들과 기독교 관습을 조화시킨 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전사와 함께 전장에 나섰다.
명문 양쪽에 있는 십자가는 종교적 신념과 왕권신수설을 상징했을지 모르지만, 모든 전사가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든 것은 아니다.
일부 울프베르트 검은 초대 영국 왕의 궁정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다른 검들은 다양한 지역 여러 대장장이가 다양한 전통을 바탕으로 제작했으며, 각 검에는 조상의 힘을 빌려 전투에서 자신을 지켜주기를 기원하는 고유한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