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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맞은 리틀 이탈리아 산 젠나로 축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인이 된 이야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21.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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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휘튼Clare Whitton,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9월의 2주 동안, 적어도 뉴욕시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에서 매년 열리는 산 젠나로 축제Feast of San Gennaro에 모인 인파를 보면 모두가 이탈리아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1926년 시작한 미국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 축제인 산 젠나로 축제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다.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맨해튼 멀베리 스트리트Mulberry Street에 모여 이탈리아계 미국인 문화를 기념한다.

물론 상업화한 요소도 많다. 프랭크 시나트라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뉴욕, 뉴욕"을 부르고, 상인들은 영화 "대부The Godfather"와 드라마 "소프라노스The Sopranos" 명대사가 적힌 티셔츠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판다. 

치킨 파르메산 샌드위치chicken parm subs나 소시지와 피망 볶음 같은 전통적인 이탈리아계 미국 음식은 푸드 트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하지만 중세 연구가로서 나는 이 축제가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전통을 어떻게 기리는지 탐구한다.

수백 년 된 의식이 달콤한 이탈리아 소시지와 크고 흐물흐물한 피자 조각과 공존한다는 사실은 길고 고되고 아름다운 문화 동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폴리 만에서 리틀 이탈리아까지

1881년에서 1920년 사이, 450만 명이 넘는 이탈리아인이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중 대부분 남부 이탈리아 출신인 수천 명이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 정착해 오늘날의 리틀 이탈리아를 형성했다.

이 "밀집된 무리huddled masses"는 과밀한 주거 환경, 일자리 찾기의 어려움, 인종 차별, 그리고 특히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받는 남부 이탈리아 가톨릭 관습에 대한 의심 등 온갖 어려움에 직면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이탈리아인들이 행하는 종교 조각상 행렬과 뒤이은 거리 축제가 너무 이교도적이고 우상숭배적으로 보여 "진정한" 가톨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인들이 그러한 관행에 대해 품은 의심은 현지 개신교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이탈리아 공동체는 규모가 커져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교회를 자체적으로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1904년 백스터 거리에 들어선 성혈 성당Church of the Most Precious Blood이다. 1926년, 알렉산더 티시Alexander Tisi가 이끄는 교구민들은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인 중 한 명인 성 야누아리우스St. Januarius(이탈리아어로는 산 젠나로San Gennaro)를 기리는 행사를 조직했다.

초기 기독교 주교Christian bishop였던 젠나로는 305년 9월 19일 나폴리 외곽에서 신앙 때문에 잔혹하게 참수당했다. 그의 처형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인들을 체계적으로 탄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Diocletian Persecutions 기간 동안 일어난 여러 처형 사건 중 하나였다.

그 이후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1631년 베수비오 화산 불길을 진압한 일을 포함해 온갖 기적을 그의 중재 덕분이라고 여겼다.

그는 또한 예언자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적어도 1389년부터 이 성인 피가 담겼다고 전하는 두 개 작은 병이 그의 축일마다 불가사의하게 액화하는 현상 때문에 나폴리에서 숭배되었다.

이 액화 현상은 오랫동안 성인 보호를 상징하는 일로 간주됐다.

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피가 고체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임박한 재앙의 징조로 여겼다.

예를 들어, 1943년 나폴리에 대한 연합군 폭격은 성혈이 녹지 않은 후에 일어났다.

중세 후기부터 9월 19일 젠나로 축제는 나폴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축제에서는 돼지고기가 주 메뉴였으며, 거리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돼지를 상품으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

젊은이들은 나폴리 대성당 안에서 기름칠한 돼지와 씨름을 하고, 이긴 사람은 그 돼지를 요리해서 저녁 식사로 먹기도 했다.

 



문화 동화의 길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신앙심은 젠나로를 나폴리 정체성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뉴욕의 축제는 이러한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1926년에 열린 첫 번째 젠나로 축제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이탈리아에 두고 온 문화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이 행사는 0.9미터 크기의 산 젠나로 성상 행렬로 시작했다. 남자들이 어깨에 얹은 성상은 교회와 주변 거리를 돌았다.

행렬이 진행되는 동안 신도들은 성상 몸에 달러 지폐를 붙였는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렇게 한다.

성혈은 없었지만,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기증된 젠나로 뼈 조각이 있었다.

이 뼈 조각은 성유물함이라고 일컫는 둥근 용기에 담겨 성상 목에 걸렸다.

그 후, 리틀 이탈리아 이탈리아인들은 구운 닭고기를 앞에 두고 모여 공동의 유산과 전통을 기리며 건배했다.

이 행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2년 후인 1928년, 뉴욕 타임스는 수천 명 전 나폴리인이 하루에서 일주일로 확대된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승리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같은 해, 뉴욕 경찰국장 조셉 워런Joseph Warren은 동상에 붙인 달러 지폐가 "신성한 종교적 상징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행렬을 금지했다.

그러나 뉴욕 주 대법원 판사는 워런의 결정이 시민들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뒤집었다.

워런의 행렬 탄압 시도는 당시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회를 괴롭힌 종교적 편견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이 직면한 차별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남부 이탈리아인들의 검은 피부는 차별의 원인이 되었고, "기니guinea"나 "검은 피부swarthy"와 같은 경멸적인 욕설이 생겨났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은 악명 높은 블랙 핸드Black Hand와 같은 실제 마피아 조직에 의해 더욱 강화해 갔다.

이러한 편견은 이탈리아 교회 설립과 축제 개최와 맞물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고향의 전통에 너무 집착해 미국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한다는 믿음을 낳았다.

 



비이탈리아인들의 참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외부인들이 이탈리아 문화와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1949년, 지역 신문들은 다양한 민족 배경을 지닌 수천 명 사람이 떠들썩한 축제에 참석하여 거리에서 민요에 맞춰 춤을 추는 이탈리아인들을 구경하고, 새로운 시도였던 초록색, 흰색, 빨간색의 색색깔 전구 장식 아래 거리 행진을 하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했다고 보도했다.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선한 조개, 파스타, 페이스트리가 가득 쌓인 노점들은 비이탈리아인들에게 진정한 이탈리아의 맛을 선사했다.

이후 축제 참석자 수는 급증했다. 1960년대에는 전세 버스가 메인 주와 오하이오 주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이탈리아인들을 실어 날랐다.

1970년대에 이르러 이 축제에는 연간 약 300만 방문객이 몰렸다.

오늘날 많은 지역 주민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젊은이들이 상금을 타려고 기름칠을 한 채 거리 곳곳에 세운 철제 기둥에 올라가곤 한 모습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러한 기름진 놀이는 안전 문제로 1980년대에 사라졌다.

수년 동안 이 축제는 이탈리아 공동체 내부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2007년, 리틀 이탈리아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지역에 부담을 주고 마피아가 개입한다는 이유로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시장에게 축제 취소를 청원했다.

예를 들어, 1996년에는 제노바 범죄 조직 19명이 도박, 노점상들에게 금품 갈취, 심지어 젠나로 동상에서 돈을 훔치는 등의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블룸버그 시장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 행사가 뉴욕의 일부라고 말했다.

올해 축제 조직위원회는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이해한다.

2026년 축제 계획을 논의하면서 위원회는 이 행사가 단순한 이탈리아 축제가 아니라 뉴욕의 문화적 용광로cultural melting pot에 대한 헌사라고 선언했다. 

100주년 축제는 뉴욕의 탄생에 기여한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 헌정되는데, 이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영광이다.

두 달 전,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시장은 뉴욕시의 이민자 거주 지역 지도에서 리틀 이탈리아를 제외했고,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맘다니 시장은 해당 지역을 다시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일각에서는 그 누락이 멀베리 스트리트를 따라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주민 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100주년 기념행사를 관통하는 질문을 부각한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이민자들을 어떻게 기려야 할까? 특히 그 후손들이 고향을 떠나 미국 각지로 흩어져 사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쩌면 그 해답은 올해 행사 총괄 책임자인 산 젠나로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1926년 당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들과 그들의 조상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출처: 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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