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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DNA, 그리고 탄소 연대로 다시 쓰는 모로코 고대 이야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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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자 베나티아Hamza Benattia,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 위성 사진. 사진 제공: NASA/GSFC/LaRC/JPL MISR 팀


수십 년 동안 고대 지중해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페니키아, 이집트의 위대한 문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약 3,000년 전 페니키아 상인들이 모로코 해안에 도착하기 이전 북서 아프리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고고학은 다른 이야기를 밝혀낸다.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온 최초의 페니키아 선박들이 서부 지중해(오늘날의 북아프리카와 남유럽 사이)를 항해하기 훨씬 이전부터, 현재의 모로코 지역에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공동체가 있었다.

그들은 또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장거리 교역에 참여했다.

지난 10년간 나는 모로코 전역에서 고고학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농업의 기원, 장거리 교역, 그리고 복잡한 사회의 출현을 연구한다.

가장 최근 연구에서는 약 3천 년에 걸친 고고학적 증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그리고 유전자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는 기원전 38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경까지, 즉 스톤헨지 건설, 신왕국 이집트의 번성, 그리고 페니키아 해상 무역의 발흥이 이루어진 시기에 북서 아프리카가 변방 지역이 아니었음을 밝혀냈다. 

북서 아프리카는 지중해, 대서양, 그리고 사하라 사막을 연결하는 교차로였다.

이는 아프리카의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랫동안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해석은 그 사회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과소평가했다. 

고고학은 북서 아프리카를 다시 조명함으로써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고 더욱 풍부하고 상호 연결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다양한 세계의 중심지

지리적 배경은 북서 아프리카가 지중해 선사 시대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오늘날 모로코와 스페인을 가르는 지브롤터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이 약 14km(8.7마일)에 불과하다. 

이 해협은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자연적인 통로 역할을 했다.

고립된 지역과는 거리가 먼 오늘날 모로코 북부 지역 공동체들은 수천 년 동안 장거리 네트워크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 및 기타 대서양 지역과 교류했고, 사하라 사막 지역 사람들과도 소통했다. 

이후에는 지중해 상인 및 정착민들과도 교류했다.

그들은 이러한 교류에 수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고고학적 증거는 지역 공동체가 서부 지중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점점 더 시사한다.

초기 농경과 혁신

농업은 적어도 기원전 5400년경, 신석기 시대에 북서 아프리카에 존재했으며, 이 시기는 농업이 서부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기원전 3800년경, 현재 모로코 지역 공동체들은 점점 더 집약적인 농업과 목축을 실천했다. 

대표적인 예로 우에드 베흐트Oued Beht 유적이 있다. 

이 대규모 야외 정착지에서 사람들은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며 수백 개 큰 지하 구덩이에 잉여 식량을 저장했다.

최근 발굴 조사에 따르면 이곳은 작은 농촌 마을이 아니었다. 

약 10헥타르에 달하는 우에드 베흐트는 선사 시대 아프리카에서 알려진 가장 큰 농업 정착지 중 하나다. 

이 유적은 1,000명 이상의 인구를 부양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당시 북서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수준의 조직적인 사회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발전은 사하라 사막이 점차 사막으로 변해가는 등 광범위한 환경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었다. 

사막화로 지역 사회는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농업, 식량 저장, 장기 정착에 더 많은 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하는 이베리아 반도와의 교류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채색 토기 양식의 유사성과 상아 및 타조 알껍질 유물은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지르는 정기적인 교류를 시사한다. 

이 지역 사회들은 이미 더 넓은 교류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종형 토기. 출처: Wikimedia Commons



새로운 영향과 지역적 연속성

기원전 2천년대, 북서 아프리카는 더 광범위한 종 모양 토기Bell Beaker 문화 현상의 일부가 되었다. 

이 문화는 대서양 연안 유럽과 서부 지중해에 걸쳐 있는 여러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종 모양 도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에서 종 모양 토기가 발견된 것은 지역 사회가 단순히 유럽의 문화적 혁신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모로코에서는 종형 토기 유물이 독특한 지역 전통과 함께 발견된다. 

이는 지역 공동체가 기존 문화 체계에 새로운 요소를 선택적으로 통합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분명 교류, 적응, 그리고 지역 주체성의 과정이었다.

모호한 청동기 시대

기원전 1천년대[기원전 1천년을 지난 시점]는 북서 아프리카 선사 시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 중 하나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대규모 요새화한 정착지와 명확한 사회 계층 구조가 나타난다.

북서 아프리카의 고고학적 기록은 훨씬 단편적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단서들이 있다.

석관묘와 같은 매장 풍습은 사회 조직의 변화를 보여준다. 

카치 쿠치Kach Kouch와 같은 유적에서는 원형 가옥, 저장 시설, 가축 사육 등을 갖춘 정착 농경 공동체 흔적이 발견된다.

또한 이 시기까지 장거리 교류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예를 들어, 모로코 북부 강바닥에서 발견된 청동 검은 영국 제도에서 발견된 유사한 검과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지중해를 훨씬 넘어선 연결고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페니키아인과의 만남

기원전 1천년 초[기원전 999년 이후를 말함], 동부 지중해(오늘날의 레바논)에서 온 페니키아 상인과 정착민들은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이는 식민화 과정으로 해석되었으며, 현지 주민들은 더 발전된 문화를 수동적으로 수용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증거는 이러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카치 쿠치와 같은 유적에서는 현지 공동체가 고유의 건축 전통과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 

그들은 물레로 만든 토기나 철제 도구와 같은 새로운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

모로코 카치 쿠치 언덕 위의 정착지 항공 사진. 사진 제공: Hamza Benattia, CC BY


카치 쿠치와 다른 정착지들은 이러한 사회들이 외부 집단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기존 문화 전통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통합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페니키아인 도래가 모로코에 복잡한 사회가 시작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상호작용, 적응, 교류라는 훨씬 더 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진전은 모로코와 국제 연구팀이 수십 년간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고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 상당 부분은 여전히 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발견은 우리의 이해를 더욱 심화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미 분명한 것은 북서 아프리카 선사 시대는 지역 공동체가 고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간 이야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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