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현장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아일랜드 대따시 선사문화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7.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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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일랜드 상류층 근친상간"…지배층 권력 강화 수단 | 연합뉴스

"고대 아일랜드 상류층 근친상간"…지배층 권력 강화 수단, 김유아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6-18 11:40)

www.yna.co.kr

 

최근 국내에 제법 흥미로운 아일랜드 선사시대 관련 새로운 연구성과가 전해졌으니, 추리건대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연구진이 아일랜드 동부 미스 카운티에 소재하는 뉴그레인지 신석기무덤에서 발견된 한 남성 인골을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근친상간이 빈번했음을 보여주는 증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이 남성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각각의 유전자가 서로 비슷하다는 데 근거를 둔다. 이는 이 남성의 부모가 남매이거나 부모 자식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콩가루처럼 보이는 이런 근친상간은 인류역사를 통해 광범위했으니, 이것이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라 해도 5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저와 같은 전통이 있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을 순 없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덧붙여 이 무덤에 함께 묻힌 다른 사람들과 이 남성 유전자도 서로 유사성을 띠는 것으로 드러났다니 결국 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같은 종족 구성원임을 엿보게 하거니와, 이 거대한 무덤은 이 특정한 가문의 독점적 권력을 보여주는 권위 건축이 아니겠는가? 종족공동묘지인 셈이다.  

 

나아가 저 정도 무덤을 만들려면 적지 않은 노동력을 강제로 징발해야 하거니와, 그가 왕임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이 국내 보도가 인용한 연구성과는 네이처에 게재됐으니, 그 글은 아래와 같다. 

 

Incest uncovered at the elite prehistoric Newgrange monument in Ireland

The huge, elaborate, 5,000-year-old tomb at Newgrange, Ireland, is thought to have been built for a powerful elite. DNA of a man buried there reveals a case of incest. Was this a strategy to maintain a dynastic bloodline?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그렇다면 저와 같은 성과를 제공한 뉴그렌인지란 대체 어떤 곳인가? 

 

이곳 발굴성과를 토대로 볼 적에 우선 이 거대한 기념물을 만든 시기가 문제거니와, 발굴에서 수습한 유기물질을 방사선탄소연대 카본데이팅한 결과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3천200년 전이라 하니, 이와 대략 비슷한 시기, 비슷한 성격의 기념물로 간주하는 영국의 거석기념물 스톤헨지 Stonehenge에 견주어 500살 정도가 많다 한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아일랜드 역시 우리랑 처지가 비슷한 점이 많아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하는 국수주의 혹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라 나는 생각하는데, 또 견주어 말하기를 이집트 기자지구 대피라미드보다 앞선 건축이요, 덧붙여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보다도 앞선 시대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보곤 한다. 

 

그렇다면 저 기능은 무엇인가? 보다시피 원형으로 테두리를 돌리고서 그 안쪽에다가 봉긋하게 흙과 돌을 채운 구조이니, 이런 모양은 거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근간이 무덤이라, 이 뉴그레인지 역시 무덤임은 확실하다. 왜냐 하면 발굴조사 결과에서도 무수한 사람 뼈다구가 내부에서 발견된 까닭이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하지만 그 기능이 무덤만인가? 하는 데는 좀 도 많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리 역시 무덤이 단순히 사람을 묻은 곳을 넘어 선산이라는 표지적 기능도 있고, 종중 중심을 차지하는 위상과 더불어 조상숭배라는 그런 다면적 층위가 있듯이 이곳 역시 그러한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대략 5천년 전 아일랜드는 석기시대라, 개중에서도 신석기시대로 편년한다. 그런 시대에 저만치 대따시 큰 기념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저때는 금속기가 등장하기 전이다. 이런 신석기시대 기념물이 아일랜드에는 곳곳에 포진하는데, 그 참 희한한 족속이었나 보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입구 막음돌

 

저 기념물을 뉴그레인지 메갈리식 패시지 툼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이라 하거니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영국령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를 향해 치달려 올라가는 지점 중간쯤에 위치하는 브루 나 보인 Brú na Bóinne 이라는 유적군을 형성하는 같은 시대 같은 성격의 무덤군 중 하나를 차지한다. 

 

이 브루 나 보인에는 저런 거대 봉분으로 현재 3기가 남아 있어, 그에다가 각기 이름을 부여했으니, 뉴그레인지 Newgrange가 그 하나요, 나우스 Knowth 가 있으며, 다우스 Dowth 가 또 하나다. 이 중에서도 뉴그레인지와 나우스 두 곳만 제대로 정비 공개될 뿐이요, 다우스는 비실비실하고 제대로 정비조차 되지 아니해서 찾아가기도 무척 어려워, 현지에서도 그 흔한 도로 안내판 하나 없다. 나는 개략적인 지도와 현지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전면

 

다시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 로 돌아가면, 뉴그레인지는 지명이요, 메가리식은 Megalithic 거석문화에 관련한다는 뜻이어니와, Passage Tomb 이란 무덤 중에서도 외부에서 그 안쪽으로 통하는 무덤길을 마련한 것을 말하거니와, 한국고고학계에서 통용하는 표현을 빌린다면 바로 횡혈식橫穴式 무덤을 말한다. 이 뉴그레인지는 그 통로가 끝나는 안쪽에 chamber 라 표현하는 현실玄室, 곧 무덤방을 별도로 조성하고 더구나 그것은 돌을 쌓았으니, 우리네 고고학계에서 쓰는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그것과 영략없이 일치한다. 

 

Newgrange Megalithic Passage Tomb..사람들이 모인 곳이 입구다. 

 

곧 저 말은 뉴그레인지라는 거석문화를 기반으로 삼는 횡혈식석실분이라는 뜻이다. 

 

지름 85미터, 높이 13미터, 전체 너비 4천500제곱미터인 봉분은 흙과 돌로 쌓았다. 봉분 아랫부분 테두리를 둘러가며 kerbstone이라는 커다란 호석護石들이 열을 이루거니와, 개중 일부에는 동심원을 비롯한 각종 기하학 문양을 새겼다. 

 

전면 허연 부분은 석영제 돌 quartz stone과 둥근 자갈돌을 이용해 1970년대에 새로 쌓았다. 다만 이런 복원 방식은 적지 않은 논란을 불렀다. 

 

무덤길..몰래 찍은 게 아니라, 찍다보니 촬영금지라 해서 멈춘 순간이다. 

 

석실로 통하는 총길이 19미터, 봉분 중앙지점까지 대략 3분의 1을 관통하는 무덤길은 봉분 남동쪽에서 중심을 향해 뚫렸으니, 현재 입장이 가능하다. 그것이 다다른 지점에는 하나로 연결된 작은 방 세 개로 구분되는 무덤방이 있다. 세 개 방 중 중앙방이 가장 크고 궁륭형 천장이다. 작은 두 방 바닥엔 대야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진 돌이 깔렸다. 그 돌 복판 파진 곳엔 아마도 인골을 안치했던 듯하다. 

 

무덤방까지 입장을 허용하지만 내부 사진 촬영은 불허한다. 

 

무덤길

 

무덤길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관통할 만한 너비인데, 양쪽 벽면에 큰 판돌을 세운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런 세움돌 중 서쪽 벽면 22개, 동쪽 멱변 21개는 높이 평균 1.5미터가 넘는다. 또 돌 대부분 조각이 발견된다. 이런 조각 중 무덤길 입구를 가로지른 통돌에 새긴 동심원이 유명하다. 이 막음돌은 길이 3미터, 높이 1.2미터, 무게 5톤이다.

 

지질학적 분석 결과에 의하면 이 무덤을 쌓는데 쓴 경사암 greywacke stone 은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대략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Louth 카운티 Clogherhead 해변 암벽에서 가져왔다. 운송에는 아마 바닷길을 통해 보인강Boyne을 통해 운송한 듯하다. 밀물을 이용했을 것이다.

 

현실로 들어가는 무덤길 

 

특이한 점은 모든 판돌에서 인공 채석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캐낸 것이 아니라, 해변에 뒹굴던 자연석들을 옮긴 듯하다.

 

하지만 봉분을 쌓는데 쓰인 총중량 20만 톤에 달하는 돌들은 뉴그레인지와 보인강 사이 강변에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돌들을 캐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무덤길 천장

 

발굴은 Michael J. O'Kelly 주도로 1962–1975년에 이뤄졌다. 그 결과 불에 타거나 타지 않은 인골들이 무덤길에서 발견됐으니, 이는 이곳이 무덤임을 말해준다. 일부 인골에서는 화장 흔적도 발견된다. 조사 결과 최소 2사람 이상의 인골임이 드러났지만 뼈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이곳저곳 흩어진 상태였다.

 

주변으로 각종 다른 흔적이 즐비하다. 

 

다양한 유물이 이들 인골 주변에서 발견됐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발굴에서는 대리석 7개와 pendant 4점, 구슬 두 점, 사용 흔적이 있는 부싯돌과 뼈로 만든 끌 각 1점, 그리고 다른 골침 조각이 발견됐다. 기타 적지 않은 유물이 그 이전 무덤길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방비 노출되어 사라지거나 개인소유가 되었다.

 

무슨 흔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동지 무렵이면 해가 뜰 적에 대략 17분 정도 그 미로 같은 통로를 파고든 햇볕이 무덤방까지 비추는데, 꼭 동지가 아니라도 현실 근처까지 파고드는 햇볕을 나도 봤다. 신통 방통했으니, 이런 사실은 Michael J. O'Kelly가 1967년 12월 21일에 발견했다. 

 

 

이는 무덤이 천문학, 특히 해의 움직임과 밀접히 연동되어 만들어졌음을 추정케 한다. 

 

무덤길 반대편 봉분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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