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르바니팔 석비와 2,600년 간격의 두 차례 재앙을 생생하게 드러낸 이라크 모술의 니네베 샤마쉬 문

니네베Nineveh의 샤마쉬 문Shamash Gate은 2,600년 이상 간격을 두고 일어난 모술Mosul 역사의 두 가지 격동적인 사건, 즉 기원전 612년 신아시리아 수도 파괴와 2017년 IS로부터 도시를 해방하기 위한 전투 흔적을 드러냈다.
이라크에서 발표된 한 학술 연구는 고대 니네베의 주요 입구 중 하나였던 이 기념비적인 동쪽 문에서 세 시즌에 걸쳐 진행된 고고학적 발굴 작업 결과를 보고한다.
이라크-이탈리아 니네베 탐사대 일환으로 수행한 이 프로젝트는 IS에 의한 광범위한 피해를 기록하고, 위험한 터널망을 안정화했으며, 아시리아인에 의한 도시의 마지막 파괴 흔적을 발굴했다.
이번 발견이 놀라운 이유는 단순히 고고학적 깊이 때문만은 아니다.
하나의 기념물이 두 번의 붕괴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하나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가 함락된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모술을 황폐화한 최근 전쟁의 참상이다.

제국을 위해 건설된 문
샤마쉬 문은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에 위치한 아시리아의 위대한 수도 니네베로 향하는 18개 문 중 하나였다.
연구에 따르면, 이 문은 기원전 705년부터 681년까지 통치한 센나케리브Sennacherib 왕 시대에 진행된 대규모 도시 확장 사업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이 문은 에르빌Erbil과 니네베를 연결하는 도로변, 도시 동쪽 입구에 위치했다.
성벽 안쪽으로는 나비 유니스 언덕Nabi Yunis과 에사르하돈Esarhaddon과 관련된 왕궁 지역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단순한 상징적인 문이 아니었다. 제국의 실질적인 동맥과 같은 역할을 했다.

돌 포장에 남은 수레바퀴 자국Cart-wheel grooves은 한때 이 문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오갔음을 보여준다.
입구의 마모, 침하, 그리고 이후의 재포장은 이 건축물이 도시 생활 중심에 있었기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성문 내부 포장이 최소 두 단계로 나뉘었음을 확인했다.
초기 포장은 커다란 돌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센나케리브 최초 건설 당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후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재위 시기에 이루어진 재포장에는 진흙 벽돌, 가는 자갈, 점토, 그리고 부서진 구운 벽돌 조각이 층층이 쌓여 통로를 평평하게 하고 개선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나서 화재가 발생했다.

니네베의 최종 파괴 증거
중앙 통로 발굴 결과, 기원전 7세기 후반, 즉 기원전 612년 메디아Medes와 바빌로니아Babylonians 연합군에 니네베가 함락된 시기에 해당하는 파괴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적에는 청동과 철제 화살촉, 토기, 장식된 뼈 단추, 인골, 그리고 대형 왕실 석비 조각이 다수 포함된다.
또한, 재와 숯이 발견되어 성문 파괴 당시 화재가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골은 매우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한 구역에서는 최소 네 명 유골이 확인되었는데 2.5~3세 정도 어린아이, 청소년 남성, 성인 여성, 그리고 성별이 확인되지 않은 성인 한 명이었다.
성문 바로 안쪽에서는 관절이 부분적으로 연결된 성인 유골 하나가 점토 표면에 엎드린 채 발견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고대 역사에서 알려진 사건, 즉 한때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 중심지였던 니네베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고고학적 세부 사항을 드물게 제공한다.

아슈르바니팔의 파편 석비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신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통치자였던 아슈르바니팔 왕과 관련된 파편 석비다.
고고학자들은 지금까지 196개 파편을 수습했다.
이 석비는 무른 돌, 아마도 백악질 석회암chalky limestone으로 만들었으며, 양면에 명문이 있다.
한쪽 면에는 서 있는 왕 모습이 묘사되는데, 아마도 아슈르바니팔 왕 자신일 것이다.

보존된 쐐기 문자는 이집트 원정, 타하르카Taharqa의 패배, 반란을 일으킨 속국 왕들vassal kings의 최후 등 기존에 알려진 왕실 명문과 동일하다.
원래 석비는 높이 최소 2미터, 너비 80~100센티미터, 두께 약 26센티미터였다.
수많은 작은 조각과 파편으로 부서진 상태는 의도적이고 폭력적인 파괴를 시사한다.
열 흔적과 탄 유기물질 흔적은 화재가 석비를 손상시키거나 파손시키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시리아학자들에게 이 석비는 왕실 이념, 제국의 기억, 그리고 성문의 고고학적 파괴를 같은 맥락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또 하나의 대파괴 ISIS 터널
두 번째 재앙은 21세기에 발생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ISIS가 모술을 장악했을 당시, 샤마쉬 문은 방어 진지로 사용되었다.
ISIS는 전투원과 탄약을 이동시키기 위해 성문 안팎에 약 210미터 길이 터널을 팠다.
어떤 곳에서는 터널이 고대 석조 및 벽돌 구조물을 관통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중앙 성문 입석과 돌 포장을 손상했다.
2021년 3D 레이저 스캐닝을 이용한 조사 결과, 터널망이 성문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터널은 기초 아래를 지나고, 다른 터널들은 경사로와 계단을 통해 구조물 상부로 이어져 있었다.
위협은 시급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협의 끝에 2022년 터널 안정화 작업을 지원했다.
터널은 IS가 파낸 흙을 담은 모래주머니로 되메웠다.
성문에는 파편, 포탄 자국, 분화구, 화재 흔적, 폭발한 수류탄 잔해 등 모술 전투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생존의 기념비
샤마쉬 문은 이제 단순한 아시리아 유적을 넘어 더욱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 제국의 몰락과 현대 도시의 트라우마가 하나의 고고학적 기록 속에서 만나는 기념비다.
이 연구는 수십 년간의 침식, 이전 복원 과정의 문제점, ISIS의 터널 공사, 그리고 전쟁 피해에도 성문 핵심 부분이 온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제 이 유적에 대한 신중한 발굴, 보존 및 복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작업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모술에도 중요하다.
샤마쉬 문은 도시의 문화적 기억 일부이며, 니네베의 살아남은 랜드마크이자 전쟁 후 회복의 상징이다.
역사가 이처럼 압축적으로 느껴지는 유적은 드물다.
이 성문에서는 기원전 612년의 화살촉과 2017년 ISIS가 파놓은 터널이 같은 유적 안에 공존한다.
그 결과 파괴와 회복력, 그리고 여러 차례 전쟁을 견뎌낸 도시의 긴 역사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고고학적 기록이 탄생했다.

Harrison T, AbuJayyab K, Batiuk S, et al. THE SHAMASH GATE, NINEVEH: A WINDOW INTO TWO EPISODES OF INSTABILITY. Iraq. 2025;87:163-183. doi:10.1017/irq.2026.1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