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Pedigree Collapse와 안동권씨 성화보/문화유씨 가정보

신동훈 識 2026. 1. 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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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성화보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우리나라 족보사의 기원을 이루는 두 문중의 족보가 있으니 

하나는 안동권씨 성화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유씨 가정보다. 

이 두 족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계를 중심한 족보라기보다는 

모계에 사위까지 아는 사람은 다 적어 놓은 

집안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다 적혀 있는 족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사위의 사위의 사위까지 집안 계보를 적어 놓아 

조선 전기 당시 지배층 70프로인가가 이 족보에 이름이 들어와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실제로 이 족보를 보면 (디지털 사이트에 전 족보가 심심찮게 올라 있다)

조선후기 부계 족보라면 절대로 올라있지 않을 정보까지 다 올라가 있으니 

이 집안과 혼맥이 있는 집안의 사위의 사위의 사위 집안 계보까지 적어놨으니 

당시 지배층 70프로가 적혀 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조선전기라고 하면 신진사대부에 

뭔가 이전의 귀족제와는 다른 폭넓은 씨족의 연대로 이루어진 

과거제 중심의 신 사회를 우리는 연상하지만 

실제로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유씨 가정보를 보면

조선전기 지배층은 매우 좁은 혼맥에 의해 서로 얽히고 얽혀 있는 소집단으로 

안동권씨 성화보아 문화유씨 가정보에 전체 지배층 70프로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인구집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인구집단은 서로간에 혼맥이 얽히고 섥혀

부계가 아니라 모계로 따라올라가면 무수히 많은 조상이 겹치고 겹쳐

Pedigree Collapse의 현상을 보이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그렇다면 조선후기가 되면 이와는 달라지는가? 

그것이 아니고 또 나름의 소규모 집단이 조선후기의 지배층을 이루며

서로간에 혼맥을 중층적으로 하며 Pedigree Collapse가 이루어질만한 

좁은 인구집단을 이루었을 것이니, 

같은 양반이라 해도 이 혼맥에 의해 이루어진 좁은 인구집단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이 

바로 향반 내지는 잔반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조선시대는 폭넓은 가문이 지배층으로 참여하는 사대부사회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로는 아주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혼맥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며

중층적인 혼맥을 가져가던 사회였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여기서 이탈해 있는 사람 중 자기도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향반 아니면 잔반이고 

양반도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평민, 혹은 노비, 혹은 거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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