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고대 못이 그대로 박힌 로마 철제 창살

스위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Augusta Raurica 로마 유적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희귀한 철제 창살iron window grille을 발견했다.
이 창살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원래 박혀 있던 못 두 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발견은 바젤 인근에 위치한 중요한 고대 도시인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에서 복원된 로마 가옥 주변을 발굴하던 초기 몇 주 동안 이루어졌다.
고고학자들은 지하 약 1.7미터에서 석조 구조물 유적 사이에서 이 철제 창살을 발견했으며, 현재 그 역사적 배경을 조사 중이다.
2026년 10월 8일,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이곳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유물이 극히 드물다고 발표했다.
로마 유적에서 흔히 발견되는 도기, 동전, 기타 일상 용품과는 달리 완전한 형태의 건축용 철제 창살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새롭게 발견된 창살은 다섯 개 철제 막대가 관통하고 두 개 평평한 철판으로 연결되었으며,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 고리들은 건축업자들이 나무 창틀에 고정한 흔적을 보여준다.

불확실한 운명을 지닌 로마 건축물
이 창살은 석조 구조물 유적 안에 묻혀 있었는데, 이는 창살이 묻히게 된 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고고학자들은 화재로 인해 건물이 약해져 벽 일부가 무너졌는지, 아니면 다른 구조적 결함으로 창문이 떨어졌는지 조사 중이다.
고고학자들은 1990년대에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지역 주변에서 두 차례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를 통해 이전 조사에서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건축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에서는 동서 방향 벽 일부와 격자 구조가 드러났다.
발굴팀은 전문가들이 구조를 조사하고, 상태를 기록하고, 보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창살을 아우구스타 라우리카 고고학 유물 보관소로 옮겼다.
추가 연구를 통해 건물의 건축 시기와 붕괴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건축물의 창문
로마 창문은 건물 기능과 사용 가능한 재료에 따라 다양했다.
나무 덧문이 흔했으며, 철제 창살은 채광이나 환기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보안을 제공했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에서 발견된 창살은 금속 막대를 창틀에 어떻게 끼워 넣을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유리창 또한 로마 건축물, 특히 제국 시대에 사용되었다.
로마 시대 창유리는 일반적으로 현대 유리보다 두껍고 투명도가 낮았으며, 종종 녹색이나 푸른빛을 띠었다.
목욕탕에서는 채광을 확보하면서 열을 보존하기 위해 유리창을 자주 사용했으며, 일부 개인 주택에도 유리창이 있었다.
영국박물관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지역에서 출토된 초기 로마 시대 유리창을 소장하는데, 이는 서기 1~7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가로 약 54cm, 세로 약 31cm 크기 이 유리창은 로마 장인들이 서기 1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크기의 유리판을 제작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에서 발견된 이 유리창은 원래 창문에 유리, 광석판, 또는 나무 덧문이 사용되었는지 여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은 철제 구조물은 로마 건축가들이 창문을 어떻게 고정했는지에 대한 귀중한 물리적 증거를 제공한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 라인 강변의 로마 도시
이 발견은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유적 중 하나인 아우구스타 라우리카에서 이루어졌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알프스 지역과 로마 제국 북부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 및 무역로였던 라인 강 근처에 형성되었다.
이 식민지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의 영토 확장은 켈트족 라우라키Rauraci 족이 거주하던 지역을 변화시켰다.
전략적 위치 덕분에 이 정착지는 상업, 행정, 수공예 지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서기 50년경부터 석조 건물이 기존 건축물을 점차 대체하기 시작했다.
로마가 국경을 북쪽으로 확장함에 따라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제국 내에서 더욱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주거 지역, 작업장, 공공 건물이 확장될 수 있었다.
서기 2세기와 3세기 초에 이르러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번영한 로마 도시 중심지 건축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극장, 신전, 공중목욕탕, 포럼, 원형극장과 같은 기념물이 세워졌고 거리에는 상인, 장인, 그리고 다양한 사회 계층의 주민들이 거주했다.
도시의 운명은 3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뀌었다.
라인 강 국경 지역 정치적 불안정과 군사적 위협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지만, 요새화한 정착지인 카스트룸 라우라첸세(Castrum Rauracense)를 포함한 이 지역에는 로마의 점령이 계속되었다.
오늘날 이 고고학 공원에는 로마 제국 시대 가정생활을 보여주는 복원된 로마 가옥을 비롯해 도시 역사 중요한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출처: 아우구스타 라우리카Augusta Rau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