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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철기시대 최대 '매장 언덕'은 왕의 무덤이 아닌 대재앙의 기념비일 수도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4. 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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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디 오스터Sandee Oster, Phys.org

1906년의 라크네하우겐Raknehaugen. 사진 제공: 오슬로 문화사박물관Museum of Cultural History, Oslo / 유럽 고고학 저널(2026). DOI: 10.1017/eaa.2025.10026


새로운 LiDAR 분석에 따르면 라크네하우겐Raknehaugen은 고위층 인물을 기리기 위한 무덤이 아니라 파괴적인 산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럽 고고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Archaeology에 발표된 라르스 구스타브센Lars Gustavsen의 연구는 스칸디나비아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언덕이 고위층 인물의 매장지로 건설되었다는 오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라크네하우겐 언덕Raknehaugen mound

전통적으로 철기 시대 언덕은 엘리트와 권력자의 매장지로서 사회정치적 권력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라크네하우겐에서는 매장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과 특이한 구조 때문에 라크네하우겐이 애초에 매장지로 의도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A) 연륜연대 분석을 위해 채취한 목재들. 일부 목재는 절단된 것이 아니라 부러진 것을 알 수 있다(사진: S. Grieg, 1940, 오슬로 문화사박물관). B) S. Grieg가 그린 스케치로,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리'가 있는 절단된 목재들을 보여준다(오슬로 문화사박물관 소장). A)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복제됨. B) 오슬로 문화사박물관 소장 자료.


오슬로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언덕은 원래 높이 약 15m, 너비 약 77m에 달했다.

1869년과 1870년에 고고애호가 안데르스 로랑게Anders Lorange가 처음 발굴했지만, 언덕 기저부까지 도달했음에도 중앙 매장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1939년과 1940년에 시구르드 그리그Sigurd Grieg가 발굴을 진행했지만, 마찬가지로 매장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이 발굴을 통해 로랑게가 묘사한 언덕의 특이한 구조는 확인되었다.

이 언덕은 오래된 밭 위에 세웠으며, 가장 밑바닥은 잔디층 위에 점토와 모래가 번갈아 쌓인 구조였고, 그 아래에는 화장한 뼈 조각이 포함된 작은 탄화층이 있었다.

이 지층 위에 언덕 건설자들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얇은 소나무 가지, 나뭇가지, 이끼, 그리고 모래 섞인 점토로 피라미드 형태 구조물을 세웠다.[뭐여? 부엽공법?] 
 

A) 1939~1940년 발굴 당시 라크네하우겐에서 채취한 목재들. (사진: S. Grieg, 1940, 오슬로 문화사박물관). B) 언덕에서 발견된 그루터기 끝부분 중 하나. 왼쪽에 있는 배낭은 높이가 약 50cm이다. (사진: E. Mork, Ording, Ording1941: 106 참조). A)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재사용됨. B) 노르웨이 생물경제연구소 허가를 받아 재사용.


이 첫 번째 목재 피라미드 위에 모래와 점토층을 덮은 후, 더 무거운 목재 조각과 통나무로 이루어진 두 번째 목재 구조물을 쌓았다.

두 번째 목재 구조물 위에도 흙층을 덮고, 마지막으로 약 25,000개 통나무를 천막처럼 쌓아 올린 후 여러 겹 모래와 표토로 덮었다.

이 목재 구조물은 매우 조악하여 연구자 A. 오딩Ording 은 이를 "매우 추악하다"고 묘사했다.

최종적으로 봉분에 대한 재평가는 다그핀 스크레Dagfin Skre가 했다.
스크레는 목재 샘플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사용해 봉분 건설 시기를 서기 536년에서 660년 사이로 추정했다.

또한 봉분 건설에는 약 450~600명 인력이 필요했으며, 목재 공급을 담당할 30~60명 인력이 추가로 필요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분석한 화장된 유골은 20~40세 사이 사람 것으로 밝혀져 봉분이 매장지였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range’s (Reference Lorange1871) drawing of Raknehaugen.

 
그러나 이후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해당 인물은 봉분이 건설되기 수 세기 전인 기원전 1391년에서 1130년 사이에 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골이 봉분 건설 당시 흙과 함께 의도적으로 매장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봉분에서 발견된 소나무 100그루에 대한 상세한 연륜연대 분석에 따르면, 이 봉분은 서기 551년 무렵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나무는 북반구에 대규모 기후 변화를 일으킨 이른바 '먼지 장막 사건'(Dust Veil Event) 이후 약 15년 만에 벌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화산 폭발은 서기 536년에서 660년 사이에도 계속되어 장기간의 기온 하강, 흉작, 기근, 인구 감소를 초래했다.

발굴(1939~1940년) 당시 드러난 두 번째 목재층. 출처: S. Sand, 1940 / European Journal of Archaeology (2026). DOI: 10.1017/eaa.2025.10026


재난 대응

 "여러 차례 발굴에도 봉분을 매장지로 해석할 근거가 항상 미약했기 때문에, 나는 이 봉분을 매장지로만 해석하는 것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고 구스타브센 박사는 설명했다.

"사실 저는 산사태 흔적을 아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라이다(LiDAR) 데이터를 이용해 봉분의 가시성을 조사하던 중, 제가 지형 분석에 사용하던 시각화 자료 중 하나에 갑자기 봉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라이다 스캔 결과, 길이 약 3,800미터, 폭 20미터, 높이 약 40센티미터에 달하는 고대 산사태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이 산사태 흔적을 계기로 나는 봉분의 내용물, 특히 목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목재들은 봉분이 고위층 매장지보다는 의례용 구조물이었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보였기 때문이다"고 구스타브센 박사는 설명했다.
 

오르딩이 조사한 목재 단면 중 하나. 단면의 흰색 표시는 거의 보이지 않는 15번째 나이테를 나타낸다(사진: H. Roll-Hansen, Ording 저서(Ording1941: 113) 참조). 노르웨이 생물경제연구소의 허가를 받아 재현함.

 
"오늘날 풍경 속에서 어느 정도 눈에 띄긴 하지만, 규모가 매우 크면서도 지형이 아주 완만하게 움푹 들어간 형태이기 때문에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구스타브센 박사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라이다(LiDAR) 데이터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전 연구들은 언덕 내부만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주변 경관과의 연관성을 간과했습니다."

라크네하우겐이 고대 산사태 지역에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빙하 퇴적물로 이루어진 모래 평원, 남쪽과 서쪽으로는 비옥한 점토질 토양이 펼쳐진 지리적 경계에 위치하며, 북유럽 기후 변동이 심한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은 이 언덕이 대재앙적인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기후 악화는 농업에서 목축으로의 전환과 맞물렸는데, 이로 인해 토양의 수분 흡수 능력이 뛰어난 초목이 사라졌을 것이다.

기온 하강과 폭우가 겹치면서 라크네하우겐 남쪽 주변 점토질 토양이 불안정해져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라크네하우겐 바로 남쪽에 위치한 산사태 흔적으로, 면적은 1km²가 조금 넘는다(배경 데이터: © Kartverket, 2025).


무덤을 구성하는 목재의 특이한 형태, 예를 들어 잘린 것이 아니라 부러진 통나무, 재성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게 벤 나무, 뿌리째 뽑힌 나무, 그리고 대부분이 한 해 동안 벤 나무들임을 고려해 볼 때, 이 나무들은 산사태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언덕은 19세기 수단의 누에르족이 천연두와 우역 발생 후 세운 거대한 언덕이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지진 발생 후 건설된 거석 기념물처럼 재난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매장지가 명확하지 않은 언덕이 많지만, 라크네하우겐은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구스타브센 박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이 연구는 봉분을 주로 장례 구조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때로는 의례 구조물로 보는 관점으로 초점을 옮김으로써 봉분 현상 전반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More information
Lars Gustavsen, The Late Iron Age Mound Raknehaugen in Norway: A Ritual Response to the Sixth-Century Crisis, European Journal of Archaeology (2026). DOI: 10.1017/eaa.2025.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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