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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DNA가 폭로한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중앙 유럽의 변화, 헝가리 롬바르드의 경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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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레스테Szeleste 출토 무덤 유물들. 방패 중앙 부분(움보umbo , 오른쪽 위), 다양한 브로치(가운데), 모자이크 구슬, 그리고 사슴뿔 빗(왼쪽 위)이 보인다. 사진 제공: 사바리아 박물관Savaria Museum, 솜바텔리Szombathely, 헝가리

 
로마 제국이 판노니아Pannonia에서 단순히 사라지고 새로운 이주민들이 정착할 빈 땅만 남겨둔 것은 아니다.

로마 시대부터 초기 중세 시대 사이에 묻힌 314명 고대 DNA 분석 결과, 훨씬 더 복잡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북쪽에서 온 이주민이 상당수 유입되었고, 로마 시대 인구 후손들은 그곳에 남아 서로 다른 가족, 부, 권력 체계를 지닌 공동체를 형성했다.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된 이 연구는 노이지들 호수Lake Neusiedl 동쪽에서 헝가리 북서부까지 뻗은 소헝가리 평원Little Hungarian Plain 7개 공동묘지를 조사했다. 

고대 DNA와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 그리고 이동성과 식단과 관련된 동위원소 증거를 결합해 연구진은 서기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로마의 옛 다뉴브 국경을 따라 발달한 사회를 재구성했다.

로마가 남긴 사람들

수 세기 동안 판노니아는 로마 제국 가장 중요한 변경 지역 중 하나였다.

카르눈툼Carnuntum과 아라보나Arrabona(현대의 죄르Győr. 괴르?)와 같은 요새, 도로, 그리고 도시 중심지는 이 지역을 더 넓은 군사 및 상업 네트워크와 연결했다.

두 곳 로마 시대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68명 유전체는 이러한 연결된 세계를 반영했다.

대부분은 남유럽과 관련된 조상을 보여주었지만, 연구진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관련된 유전적 배경도 확인했다.

이 결과는 로마 시대 판노니아가 단일 민족이 거주하는 고립된 변경 지역이 아니라, 이동성이 높고 국제 제국 일부였다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로마의 권위는 5세기 초 무렵 약화했다.

요새는 버려지고, 도시는 쇠퇴했으며, 이 지역은 훈족Hunnic, 고트족Gothic, 헤룰족Herulian과 같은 다양한 세력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행정 체계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로마 속주 주민 후손 중 일부는 남았고, 다뉴브 강 북쪽 공동체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온 이주민들이 판노니아를 변화시켰지만, 판노니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가장 큰 유전적 변화는 6세기 공동묘지 다섯 곳에서 발굴된 246명 유골에서 나타났다.

이들의 유골에는 북유럽 혈통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과거 로마 속주였던 이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시사한다.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이러한 이주의 가장 유력한 배경은 팽창하는 롬바르드 왕국이다.

롬바르드족Lombards은 다뉴브 강 북쪽에 기반을 두고 서기 500년경 판노니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568년에는 롬바르드족 상당수가 이탈리아로 이주했고, 그곳에 새로운 왕국이 세워져 8세기 후반까지 존속했다.

하지만 유전적 증거는 단일 인구 집단이 한순간에 유럽에 도착했다는 기존 관점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기간에 걸친 이동과 북쪽 지역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접촉을 시사한다.

이러한 차이점은 기존의 민족 대이동 시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하나의 통합된 집단이 유럽 전역을 이동하며 모든 주민을 대체했다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유전적 증거는 반복적인 도착, 소규모 이동, 지역적 동맹, 그리고 점진적인 혼합을 보여준다.

판노니아의 인구 구성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지만, 단순한 인구 대체는 아니었다.

이 활 모양 브로치는 가넷 보석garnet gemstones으로 장식했다. 출처: 사바리아 박물관, 솜바텔리, 헝가리.

 
두 곳 공동묘지가 드러내는 두 개 서로 다른 사회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 중 일부는 헤지쾨Hegykő와 셀레스테Szeleste라는 두 공동묘지에서 나왔다.

이 두 공동묘지는 언뜻 보기에 매우 유사해 보인다.

두 곳 모두 북유럽과 남유럽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묻혔고, 6세기 롬바르드 시대 판노니아에 속했다.

하지만 두 공동묘지의 내부 조직은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헤지쾨에서는 주로 북유럽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대규모 혈연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무기, 브로치, 기타 귀중품과 함께 더욱 풍성한 매장을 했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들은 더 나은 식단을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헤지쾨의 권력은 엘리트 혈연 집단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와 사회적 지위는 가족 관계를 통해 계승되었으며, 소수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셀레스테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헤지쾨보다 혈연 관계가 덜 광범위한 것을 발견했으며, 가족 구성원에는 북유럽과 남유럽 혈통을 가진 사람이 모두 포함되었다.

지역 주민들과 동떨어진 엘리트 가문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셀레스테 공동묘지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조는 매우 중요하다.

유사한 유물과 매장 풍습이 반드시 동일한 사회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정착지는 긴밀한 혈연 관계를 가진 전사 엘리트가 지배했을 수 있는 반면, 인근 다른 공동체는 혼합된 가족과 느슨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조직되었을 수 있다.

롬바르드 사회에는 단일한 사회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주에서 계층적으로 구조화한 로마 이후 정치체로의 전환. 이 도식은 북유럽(파란색)과 남유럽(빨간색) 출신 이주민들의 융합을 통해 6세기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대 DNA, 동위원소 데이터, 고고학적 데이터를 결합해 로마 이후 세계에서 복잡한 지역 계층 구조가 어떻게 출현했는지 재구성할 수 있다. Yijie Tian et al., Science(2026)


DNA 분석 결과가 스칸디나비아 기원설을 뒷받침하는가?

중세 후기 기록에는 롬바르드족이 원래 스칸디나비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이주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기원설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유전자 분석 결과는 롬바르드족 전체가 스칸디나비아에서 판노니아로 직접 이동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게 만든다.

역사가 발터 폴Walter Pohl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북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 중 일부에서 현대 북부 독일에서 발견되는 조상과 유사한 스칸디나비아 관련 유전적 요소를 발견했다.

그의 해석은 신중하게 제한적이다.

즉, "롬바르드인" 전체가 스칸디나비아에서 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확장에 관여한 많은 사람이 스칸디나비아 조상을 두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다.

DNA는 생물학적 관계와 지리적 조상을 추적할 수 있지만, 민족적 정체성을 규정할 수는 없다.

북부 조상을 둔 사람이 반드시 롬바르드인인 것은 아니며, 로마 속주 주민 후손이 반드시 로마인으로 정체성을 유지한 것도 아니다.

로마 국경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가 탄생하다

따라서 이 연구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주보다는 권력에 관한 것일 수 있다.

로마 제국이 붕괴된 후, 정치 질서는 단일 민족이 재건하지 않았다.

북부 조상을 둔 이주민 집단, 살아남은 속주 주민, 그리고 혼혈인들이 각기 다른 내부 구조를 갖춘 공동체를 형성했다.

헤지쾨에서는 권위가 혈통과 엘리트 가문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셀레스테에서는 통합이 가구 단위로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곳에서는 유사한 부장품이 전혀 다른 관계를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롬바르드Lombard인"이라는 명칭이 생물학적으로 균일한 인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정체성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고고학과 유전학 연구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유물, 매장 풍습, 정치적 충성심은 전체 인구가 같은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더라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이지들 호수 동쪽 세계는 단순히 로마의 세계도, 단순히 "야만인barbarian"의 세계도 아니었다.

제국의 잔해, 새롭게 등장하는 군사력, 가문 간 동맹, 그리고 점진적인 혼인이 어우러져 형성되고 있던 사회였다.

판노니아의 공동묘지들은 로마 제국의 멸망이 단순한 붕괴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새롭고 예상치 못한 복잡한 유럽 사회의 시작이기도 했다.

출처: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

Yijie Tian et al., Unveiling the complexity of post-Roman polity formation in Pannonia using ancient DNA.Science392,eaec2634(2026).DOI:10.1126/science.aec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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