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집처럼 꾸민 700년 전 원나라 가족 납골당 모양 공동묘지


산서성 양천 고신구 남양가장 원대 묘지阳泉高新区南杨家庄元代墓地
남양가장南杨家庄 원나라 무덤군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양천시阳泉市 고신구高新区 남양가장촌南杨家庄村 (현지에서는 노분을량老坟圪梁이라 한다) 서쪽 대지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총 29개 무덤이 발굴되었으며, 그중 원나라 무덤이 7기이고, 그 7기 중 벽화가 있는 데가 세 곳이다.
이 원나라 시대 무덤에 조사단은 각각 M6·M11·M15라는 구별 번호를 줬다.
개중에서도 M15가 가장 상태가 좋다. 중국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M은 mound, 곧 무덤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고고학에서 M 뭐시기라는 부호를 보면 무덤이라 보면 대과가 없다.
이 무덤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은 주변 지역 유사 유물 연대 측정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벽화에 담긴 풍부한 내용은 원나라 시대 가구 양식, 의복, 매장 풍습,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에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저들 벽화 무덤은 모두 당대 목조을 본떠 내부를 만들었다.
돔 천정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세 발 달린 금빛 까마귀와 약을 빻는 토끼, 곧 삼족금오三足金乌, 약칭 삼족오를 그렸고, 나머지 부분에는 다채로운 구름과 별 그림이 있다.
발굴조사는 저 개발사업에 즈음해 2022년 9월, 산서성고고연구원과 양천시 문물관리중심이 합동 발굴팀을 구성해 해당 지역을 발굴했으니 발굴 면적은 약 400제곱미터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M15는 무덤 통로墓道, 복도甬道, 그리고 매장실墓室로 구성된다.
무덤 통로는 장방형이며, 바닥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경사가 진다.
매장실은 팔각형 평면에 벽돌로 쌓아 올린 무덤으로, 목조 구조를 모방한 형태이며, 다섯 개 측면 방이 있다.
매장실 바닥은 벽돌로 쌓은 'U'자형 관 받침대이며, 모서리에는 벽돌 기둥이 있고, 그 위에는 벽돌로 조각한 받침대, 서까래, 기와 등 목조 건축 요소를 모방한 장식들이 있다.
측면 벽과 천장은 벽화와 그림으로 장식했다.
남서쪽과 남동쪽 벽에는 각각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지는 쇼와 등불 점등식을 묘사한 벽화가 있다.
측면 벽에는 기문둔갑奇门遁甲의 구궁팔괘九宫八卦와 구성九星, 짧은 경구 등의 내용과 더불어 "무우당无忧堂", "흥제당兴祭堂", "종조당宗祖堂"과 같은 전각 이름이 씌어 있다.
아치형 벽에는 꽃가지가 그려져 있고, 돔 동쪽과 서쪽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세 발 달린 황금 까마귀와 약을 빻는 토끼가 있다.
나머지 부분은 다채로운 구름과 별로 덮여 있다.
남동쪽과 남서쪽 벽에는 먹으로 쓴 명문이 있는데, 이는 이 무덤이 원나라 대덕大德 10년(서기 1306년)에 만들어졌음을 나타낸다.
이 무덤에서는 옥호춘자병玉壶春瓷瓶, 자발瓷钵, 자향로瓷香炉, 동전铜钱, 나무숟가락[木勺], 니완泥碗을 포함한 껴묻거리 30여건이 나왔다.
또한 면과 아마로 만든 옷과 모자[棉麻衣帽], 가죽신, 대나무 돗자리와 같은 유기물 유물도 발견되어 원나라 시대 의복, 생활용품, 장례 풍습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혀주었다.
나머지 두 벽화 무덤은 M15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연회 준비, 등불 켜는 장면, 노인들 모습, 구궁팔괘, "살아서 예로써 섬기며, 죽어서는 예로써 장사지낸다[生事之以礼、死葬之以礼]"와 같은 짧은 글귀를 묘사한 벽화로 장식되고, 연대를 적은 글도 있다.
M6은 원나라 지원至元 28년(서기 1291년), M11은 대덕大德 10년에 만들었다.
고고학 전문가들은 무덤 구조와 전체적인 배치를 바탕으로 이 세 벽화 무덤 주인이 지역 부유한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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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2022~23년 공개된 발굴 소식이다. 여러 자료를 수렴하다 보니 일부 중복 기술이 있다.
아래 더 최신 뉴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차분히 일렬로 정리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막 던진다.
작년 6월 저와 관련한 업데이트한 소식이 있으니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산서성고고연구원이 저 원나라 시대 벽화묘 자료를 공개했으니, 저 무덤에서 발견되는 묘제기墓题记에 따르면, 이 무덤은 대원국大元国 지원至元 28년(1291) 7월 13일에 만든 것으로 명확히 나타난다.
무덤 구조는 온전하게 보존되었고, 정교한 세공 기술과 아름다운 벽화가 돋보인다.
19점 껴묻거리가 출토되었으며, 이는 이 지역 가씨족贾氏 합장묘임을 시사한다.
특히, 당호堂号를 설치한 무덤은 양천阳泉 지역 동시대 무덤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사례다.

이 무덤은 마을 주민들이 양천시阳泉市 고신구高新区 물류단지物流园项目 조성사업을 위한 무덤 이장 과정에서 발견했다.
추가 발굴을 통해 총 31개 무덤을 더 찾았다.
이에 산서성고고연구원과 양천시 문물관리중심阳泉市文物管理中心은 합동 발굴팀을 구성해 모든 무덤에 대한 긴급 발굴을 진행했다.
이 중 3곳은 언제 만들었는지 그 연대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증거가 있는 벽돌 벽화묘[砖室壁画墓]다.
M6이라는 번호를 부여한 무덤은 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나라 시대 무덤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관련 자료와 매장 유물에서 드러난 먹글씨 '가贾'를 바탕으로, 무덤 주인은 가씨贾氏 가문 일원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남동쪽 벽에 적은 "대원국 지원 28년 7월 13일[大元国至元二十八年七月十三日]"이라는 글귀는 유사 무덤 연대 측정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한리중韩利忠은 지원 28년이 서기 1291년에 해당하며, 이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忽必烈 칸이 왕조 이름을 원나라로 바꾼 지 20년 후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 북중국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산서성은 지리적 이점과 원나라 수도인 대도大都(베이징)와의 근접성 덕분에 원나라 황제들 높은 관심과 중시를 받아 금金나라 말기의 혼란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전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번영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남양가장촌南杨家庄村은 원나라 시대에 평정주平定州 관할이었습니다. 평정은 한나라 건원 建元 원년에 상애현上艾县이라는 이름으로 현급 행정 구역으로 처음 설치되었지만, 오랫동안 작은 변방 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북송 시대에 송 태조가 하동河东을 공격할 때 처음으로 정복한 지역이 되면서 태평흥국太平兴国 2년에 평정군平定军이 창설되었습니다. 금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면서 평정현은 점차 산시성 동부[晋东]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수년에 걸쳐 발굴된 수많은 송, 금, 원 시대 벽돌 무덤과 함께 이러한 발굴 결과는 당시 부유층 생활 방식을 보여주며, 평정주의 정치·경제적 지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물증을 제공합니다."
이 무덤에는 7명 유해가 세 개 측면 방[耳室]에 세 그룹으로 나뉘어 안치되었다. [납골당 비슷하다 보면 되겠다]
유골들이 정성스럽게 배열되고 모인 것으로 보아 한 씨족의 이장묘였음을 알 수 있다.
세 개 측면 방 배치와 장식 양식을 보면 한 가족의 세대가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 측면 방[北耳室] 문 양쪽에 그린 시종侍者들, 문 위[门额] 명패[牌匾] 양식, 그리고 먹으로 쓴 건물 이름[堂号]은 이곳이 존귀한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북동쪽과 북서쪽 측면 방에 대칭으로 배치된 '안락당安乐堂'과 '정락당静乐堂'은 소목昭穆 제도 매장 풍습을 반영하며, 아들 세대 두 형제가 이곳에 묻혔음을 시사한다.
북서쪽 측면 방 남서쪽 구석에 있는 어린아이 유골은 손자 유골이다.
이처럼 건물 이름을 새긴 형태는 양천阳泉 지역 동시대 무덤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
출토 기물로는 자기瓷器、도기陶器、동기铜器、철기铁器를 포함한 19건(세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