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중세까지 자작나무 껍질 문서로 사용

고고학자들이 중세 노브고로드Novgorod에서 자작나무 껍질 문서birch bark writing가 15세기 후반 모스크바에 합병된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제40회 전러시아 학술대회 "노브고로드와 노브고로드 지역: 역사와 고고학"에서 발표되었으며,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알렉세이 기피우스Alexei Gippius 연구원이 2025년 발굴 시즌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발견은 벨리키 노브고로드Veliky Novgorod가 중세 동유럽에서 가장 높은 문해율을 자랑하는 사회 중 하나였음을 더욱 확고히 하며, 12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의 세금, 무역, 법률 관행 및 일상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자작나무 껍질에 쓴 새로운 편지 6점 발견
2025년 고고학 발굴 시즌 동안 연구진은 1232번부터 1237번까지 번호를 매긴 자작나무 껍질 문서 6점을 발굴했다.
이 중 4점은 트리니티Trinity 발굴 현장에서, 1점은 이오안노프스키Ioannovsky 발굴 현장에서, 나머지 1점은 승리 기념비Victory Monument 근처 예카테리닌스카야 고르카Ekaterininskaya Gorka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발견은 15세기 후반 또는 16세기 초로 추정되는 1237번 문서다.
이 연대 측정 결과는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쓰는 전통이 이전에 생각한 것처럼 15세기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1478년 이반Ivan 3세가 이끄는 모스크바 대공국Grand Duchy of Moscow이 노브고로드를 합병한 이후 이른바 모스크바 시대Moscow period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소장의 고문인 페트르 가이두코프Petr Gaidukov에 따르면, 이 편지에는 바구니에 보관된 물품 목록, 특히 귀리와 호밀이 적혀 있다.
처음에는 16세기 것으로 여겨졌지만, 추가 조사 결과 15세기와 16세기 사이의 과도기에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은 모스크바의 정치적 통합 이후 노브고로드의 독립적인 문자 문화가 쇠퇴했다는 오랜 통념에 도전한다.

카르고폴Kargopol에서 발견된 12세기 세금 기록
하지만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은 아마도 12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 1232호일 것이다.
이 문서는 볼로소보 포고스트(Volosovo Pogost)에서 징수한 공물을 기록하며, "볼로소보 포고스트에서 징수한 공물은 80과 8 그리브나grivnas다"라고 명시한다.
이 언급은 중세 시대에 노브고로드 지배를 받던 오늘날의 카르고폴 인근 지역과 관련이 있다.
이 문서는 공물 납부에 대한 드문 정량적 자료를 제공하며, 북부 러시아 깊숙이 뻗은 노브고로드의 광범위한 경제 네트워크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강화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발트해 무역로를 따라 주요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한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정교한 행정 체계를 보여준다.
법률 기록과 채무 목록으로 드러나는 일상생활
다른 편지들은 법률 및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문서 1234호는 중세 시대에 일부가 잘려나갔지만, 채무자에게 집행관을 파견하라는 내용이 담긴 조각이 있다.
"집행관bailiff을 그에게 보내라." 이는 중세 노브고로드에 체계적인 법 집행 메커니즘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조각들을 복원한 문서 1235호에는 중세 루스Rus에서 사용한 초기 화폐 단위인 쿠나kunas와 레자나rezanas로 기록된 채무 금액이 적힌 채무 목록이 있다.
이 문서에는 페르비아타Pervyata, 로흘로Rokhlo, 달코Dalko를 비롯한 여러 인명과 특히 보기 드문 고대 이름인 "지토지즌Zhitozhizn"이 언급된다.
언어학적으로 이 이름은 특히 흥미롭다.
고대 슬라브어 이름 어근인 "지트Zhit"와 "지즌Zhizn"이 결합된 형태인데, 이 두 어근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발견은 고대 동슬라브어 작명 전통과 언어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다.
문서 1236호에는 "드미트리Dmitry가 푸네야Puneya를 통해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는 짧은 가정사가 담겼다.
한편, 이오안노프스키 발굴에서 발견된 14세기 문서 1233호는 보야르 미망인boyar widow과 그녀의 아들들에게 보내는 존경의 편지로, 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러한 편지들은 당시 문명화한 사회에서 무역, 통치, 가족 간 소통, 그리고 법적 절차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자작나무 껍질 문자 체계: 중세의 혁신
자작나무 껍질 문자 체계는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노브고로드와 기타 동슬라브 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독특하고 실용적인 통신 체계였다.
값비싼 양피지 대신 주민들은 북부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얇은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글자는 잉크 대신 스타일러스stylus를 사용하여 껍질 안쪽 표면에 직접 새겨 넣었다.
이 문자 체계는 9세기에 성 키릴Saints Cyril과 메토디우스Methodius가 개발한 문자를 변형한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를 사용했다.
노브고로드의 물에 잠긴 토양은 유기물을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하는데, 이러한 토양 덕분에 자작나무 껍질은 오랫동안 내구성을 유지했다.
고고학자들은 1951년 첫 발견 이후 1,200점 이상의 자작나무 껍질 문서를 발굴할 수 있었다.
문해력이 주로 성직자와 엘리트층에 국한된 많은 중세 유럽 사회와는 달리, 노브고로드의 자작나무 껍질 편지는 실용적인 문해력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상인, 장인, 여성,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편지를 썼다.
이전에 발견된 편지 중에는 글쓰기를 배우는 어린 소년들이 쓴 학교 과제와 그림이 포함된 것도 있다.
2025년의 발견은 이러한 문자 전통의 지속 기간을 더욱 확장시켜, 정치적 변혁과 모스크바 중앙집권화 시대에도 살아남았음을 증명한다.
중세 러시아 문해력의 재해석
모스크바 시대까지 자작나무 껍질 문서가 계속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노브고로드 합병 이후 문화적 쇠퇴에 대한 기존의 가정을 재고하게 한다.
오히려 이러한 증거는 행정 관행과 일상적인 문해력이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벨리키노브고로드에서 발굴 작업이 계속됨에 따라 고고학자들은 중세 러시아 사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문서들을 추가로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현재로서는 새로 발견된 여섯 통 자작나무 껍질 편지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문자가 살아남았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나무껍질에 정성스럽게 새긴 이 편지들은 수 세기 동안 땅속에 묻혀 보존되었고, 이제 역사가들이 초기 러시아 문명의 역사를 다시 쓰는 데 도움을 준다.
노브고로드 주립대학교
***
자작나무 껍질을 나는 일찍이 천마총 천마도를 근거로 서사 재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도화지였고 종이였다.
저와 같은 러시아 쪽 발굴소식은 한국고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