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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그 원조로서의 고구려 미천왕 고을불리高乙弗利[1] 왕조를 반석에 올린 철권통치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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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이른바 기산 김준근 풍속도 중 소금 만드는 사람들[鹽造之人]. 지본담채, 오스트리아 비엔나민족학박물관 소장.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으나 저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은 造鹽之人이라 해야는데, 콩클리시로 염조지인鹽造之人이라 썼다. 기산이 한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사람 아닌가 싶다. 이건 좀 조사해봐야겠다.

 
고구려 제15대 군주는 죽은 뒤 후손과 신하들이 바친 이름이 미천왕美川王 혹은 호양왕好壤王이라, 이는 국강상광개토지평안호태왕, 혹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을 약칭 광개토왕이라 했듯이, 각종 번다한 타이틀을 뒤집어 쓴 길다란 이름 약칭이겠거니와 그 풀네임은 알 수가 없다. 

미천美川 혹은 호양好壤은 그가 묻힌 묘지 이름일 것이니, 아마 그가 묻힌 고구려 왕가 공동묘지 앞 혹은 옆 혹은 뒤로는 미천이라는 강이 흘렀지 않나 싶다. 

그는 태어난 해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 제13대 독재자 서천왕西川王 혹은 서양왕西壤王 손자이면서 아버지는 고추가古鄒加를 역임한 돌고咄固라는 사람이라,

고돌가高咄固 아들인 미천왕은 본래 이름은 을불乙弗 또는 을불리乙弗利라 하고 혹은 우불憂弗이라도 했으니, 이는 (김)태식을 '태시기'라 하듯이 저 분 역시 본래는 을불乙弗 혹은 우불憂弗이라는 본래 하는 이름이겠거니와, 저것이 틀림없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나, 그 뜻을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흔히 장구한 700년 역사를 통괄해 고구려 전성기를 광개토~장수왕 시대를 꼽지만, 내가 보건대 진짜 전성기는 그의 시대라,

심대한 권력 투쟁 끝에 서기 300년 9월에 즉위한 그는 그 막강한 후견인 창조리를 등에 엎고선 331년 2월 저승으로 훅 가기 전까지 물경 31년을 권좌를 휘두르며 고구려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동북아 강자로 군림하게 한다. 

돌이켜 보면 미천왕만큼 극단을 오간 군주가 없다.

왕자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장자가 아니었던 까닭에 왕위계승에서는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 해서 왕실 다른 세력이 가만두었는가 하면 그러지를 못해 이 가문은 아버지가 권력투쟁에 희생되면서 유랑 은닉 생활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런 그가 신분을 숨기고선 생계로 마련한 수단이 소금팔이였다.

그렇다고 권력을 그가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은닉 생활을 계속하는 중에 어느날 누가 각중에 찾아와서 당신 왕 하시오, 내가 밀어줄 테니 해서 엉겹결에 업혀서 허수아비 왕이 되었다. 

하지만 뒷간은 갈 때랑 나올 때 기분이 다른 법이다.

이 꼭두각시 왕은 생각보다는 훨씬 똑똑했고, 권력이 무엇인 줄을 냉혹히 파악했으며, 이 과정에서 세력균형을 이뤄가며 정국 안정을 꾀하고선 마침내 훗날에는 소위 독자 노선을 구축하면서 철권통치를 구가하게 된다. 

고구려를 중흥한 군주라 해서 각종 추숭을 받은 을불, 죽어서는 결코 편할 수 없었다.

그가 죽어 채 시신이 썩어없어지기도 전에 고구려 왕도는 외적에 짓밟혀 그 시신이 끌려가는 능욕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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