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HESIS

"함양 척지토성은 5~6세기 가야 거점 치소"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5. 02:16
반응형

3차 발굴조사 1지점 석축 입면 ⓒ두류문화연구원

 
경남 함양군 2026-07-02 보도자료라, 이르기를

함양읍 백천리 일원에 소재하는 가야시대 성곽인 척지토성이라는 데를 함양군 의뢰로 매장문화재조사단인 (재)두류문화연구원(원장 정현광)이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이곳이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당시 함양 지역 정치·행정 중심지인 ‘치소성治所城’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번 조사는 국가유산청 지원을 받아 (사)한국문화유산협회(회장 김권중)가 추진 중인 ‘매장유산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 하나로 선정되어 실시하게 되었다 한다. 

보통 토성이라고 하면 평지에 만들지만, 척지토성은 성벽 둘레 약 730m인 산성이라, 2011년 ‘서부경남의 성곽’에 처음 소개된 이후 2019년 정밀지표조사, 2020년 1차 시굴조사, 2021년 1차 발굴 및 2차 시굴조사에 이어 작년에 2025년 2차 발굴 및 3차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를 토대로 삼은 올해 3차 발굴조사에서는 동쪽 체성부[성곽 중심부]와 추정 동문지 일원을 중심으로 파제꼈다 하거니와, 그에서 성벽 중심부를 ‘층첩성토層疊盛土’한 축조기법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한다.

層疊盛土라, 한국고고학은 하나 같이 이런 야시꾸리한 말만 어디에서 그리 잘도 빌려다 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만, 풀어보면 암것도 아니어서 층층이 단을 지어 쌓았다는 뜻이다! 

조사단은 상론하기를 "이는 흙을 여러 겹 반복해 다져 쌓는 방식으로, 1,500년 전 가야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3차 발굴조사 2지점 체성부 토층 ⓒ두류문화연구원


나아가 동쪽 대문이 있던 자리[동문지東門址]로 추정하는 곳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든 돌쌓음 시설 세 곳이 드러났다 한다.

개중 일부 시설은 물 흐름을 조절하는 보洑 기능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는데, 성벽 자리에다가 무슨 보? 알다가도 모르겠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척지토성이 오랜 기간 증·개축되며 지역 지배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본댄다.

보통 이런 성곽이 있으면 이를 터잡은 사람들이 살던 데가 있고[이곳은 치소라 했으니, 성곽 안팎이 사람들 살던 곳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싶다만?], 죽어서 가는 집이 있으니 실제 인근에는 백천리고분군이라 해서 이 성곽이 운영되던 시절에 만들었다고 보는 공동묘지가 있댄다. 

출토 유물과 마든 방식을 보니 척지토성은 5세기 중반기, 그러니깐 서기 450년 무렵, 신라로 치면 눌지마립간? 자비마립간 서절 아닌가 싶은데 암튼 그 무렵에 처음 만든 다음에 불과 반세기가량 지난 뒤인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기에 고쳐 쌓은 흔적이 보인댄다. 

학계는 척지토성이 가야 말기 함양지역 지배 세력 정치·행정 거점이자, 이후 신라의 지방 지배체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한다는데 어느 학계인가? 또 가야라고 하면 경상도에서 국수 말아먹듯 하는 그 몇 사람이란 말인가?
 

척지토성 1~3차 발굴조사 현황 위성사진 ⓒ두류문화연구원

 
가만, 함양은 가야 제국諸國 중에서도 어느 가야 영역 혹은 영향권으로 분류되던가? 대가야?

이번 발굴 성과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함양 지역 가야사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데, 난 모르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