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에도시대 국화 무늬 넣은 '궁중 식기' 대량 출토

에도시대 궁중에서 사용한 히젠 자기肥前磁器인 '국화 문양 넣음 식기菊御紋付染付, 키쿠고몬쓰키소메쓰키きくごもんつきそめつけ]가 교토 시내 발굴조사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천황이나 공가公家에서는 평상시 사용한 식기이지만, 상인들에게 하사되기도 하고, 그 국화가 고소御所[궁궐]에의 동경을 일으키고 시정市井에서 귀중하게 취급된 모습을 보였다.
【사진】국화 문양을 넣은 자기
이런 국화 무늬 자기는 사가 현佐賀県 아리타有田에 만들어 궁중에 납입한 얇은 사발[碗]이나 접시[皿]를 말한다.
국화 말고도 봉황과 같은 공가公家 장속装束과 공통하는 유직有職[유소쿠] 무늬를 곁들이기도 한다.
궁중에서는 한 달간 사용하고 공가나 사원에 신품으로 하사했다고 한다.
이런 자기는 교토의 공가 저택 부지 등지에서 발굴되고 있다.

특히 2013~16년 옛 니조가旧二条家 저택 유적에 해당하는 도시샤 여자대학同志社女子大學과 도시사 여자 중고교 부지(상경구上京区) 발굴 조사에서 대량으로 출토하기도 했다.
조사를 맡은 동지사대 역사자료관은 지난 2월 보고서를 간행했다. [저 놈들도 싸게싸게 보고서 먼저 내지 연구를 명분으로 저딴 식으로 거지 같이 미루고미루다 낸다! 다 감옥에 쳐 넣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교토에서 출토한 저런 자기 약 600점을 정리해 도면과 사진을 실었다.
모양과 문양으로 분류해 에도시대를 통한 변천을 보였다.
공가의 후손과 산과가山科家에 전하는 소장품도 조사했다.
10~20개 세트 사발이나 접시가 많아 200점을 넘는다.
18~19세기에도 궁중에서 계속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유물 중 상당수는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지만, 공가의 선물 상자는 포장이 단순했으며 "훌륭한 물건이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받던 물건이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 역사관 하마나카 히로시浜中邦弘 교수는 말한다.
천황이 직접 쓴 서예와 같은 것에 비하면 선물로서의 위상이 낮다고 간주됐다.
반면, 이러한 유물들이 황실과 뚜렷한 연관이 없는 상인이나 사무라이 가문으로 넘어갔을 때는 대개 낱개로 소중히 보존되었다.
이들은 운 좋게도 일시적으로라도 이러한 유물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하마나카 교수는 "국화 문양이 새겨진 그릇은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니조가二条家를 비롯한 다른 가문 문장을 새긴 것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최고위 귀족들이 특별 주문을 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니조 가문 저택 터에서 고노에 가문[近衛家] 문장을 새긴 유물이 발견된 것은 몇 가지 의문을 남긴다.
보고서는 비매품[원문 공개하겠지?]
(まいどなニュース/京都新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