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실한 뿌리를 얻고싶거더랑 마늘은 효수梟首하라

뭐 농사라 해 봐야 텃밭 수준이나 농사는 텃밭일수록 노동강도가 심할 수밖에 없는 근원하는 구조라
기계화 시대 대규모 농업은 그 주된 노동은 기계 몫이지만 소농은 그렇지 아니해서 그 모든 걸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쓰러지는 통에 마늘은 쫑다리를 뽑지 못했다.
하니 마늘이 웃자라는 통에 가야할 영양이 뿌리로 가지 못하고 공중부양해서 전부 줄기로 가고 말았다.
쫑다리를 따는 이유는 그 자체 찬거리 마련이라는 차원도 없지 아니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까닭은 그래야 뿌리가 튼실해지는 까닭이다.

화려하게 피우는 꽃과 하늘로 치솟는 나무가 대견할 수도 있겠지만 튼실한 수확을 위해선 꽃을 미리 쳐내서 솎아야 하고 대가리를 쳐서 수직지향을 수평지향으로 바꿔야 한다.
맹자인가 순자는 물은 본성이 아래 지향이라 했지만 농사가 본성을 따랐다간 알거지 된다.
그 본성을 억누르고 짓밟아 역류해야 한다.
물론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저 농업에선 없어서는 아니되는 물만 해도 흘러가는 일이 본성이라 그 길로 터주었다간 쪽박찬다.
농업은 아래로 흐려려는 물을 역류케 하는 인간 쟁투의 총화다.
그것을 막고자 댐을 만들고 보를 만들어 흘러가는 물을 막아 역류케 했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선 그것이 본성이라는 찬탄은 철학의 영역이겠고 헤세는 싯타르타를 소환해 그 깨달음을 상찬했으나 농업은 시종일관 그 대오각성의 배신자였다.
마늘은 단두대에 세워야 비로소 튼실한 뿌리를 선사한다.
아울러 이는 이런저런 핑계로 저 효수梟首를 놓쳐버린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김천엔 비가 온다.
하도 가물어 먼지가 그토록 날린 대지가 모처럼 눅눅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