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저승사자 헤르페스바이러스herpesvirus와 싸우는 사람들
by The Dallas Morning News
12월 어느 서늘한 오후, 포트워스 동물원Fort Worth Zoo[미국 댈러스 주 소재]에서 레이디 버드Lady Bird는 어미 블루보닛Bluebonnet과 이모 에인절Angel이 경호원처럼 곁을 지키는 가운데 작은 코로 물웅덩이에 물을 튀기고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키는 90cm, 몸무게는 295kg이 넘는 이 아기 코끼리는 동물원 방문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동물원 다른 곳에서는 레이디 버드를 비롯한 인간 보살핌을 받는 코끼리들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코끼리 종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수의사와 연구원들은 이번 주 이곳에 모여 야생과 동물원의 어린 코끼리들을 주로 공격하는, 소리 없는 살상자를 죽이는 질병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원인은 바로 코끼리 내피세포성 헤르페스 바이러스Elephant endotheliotropic herpesvirus (EEHV)였다.
포트워스 동물원 수의사인 사라 카니조Sarah Cannizzo 박사는 정확히 얼마나 많은 코끼리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상 모든 성체 아시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가 바이러스 보균자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북미에서는 1980년부터 2024년까지 이 바이러스로 아시아 코끼리 33마리와 아프리카 코끼리 9마리가 사망했다.
이러한 피해 규모와 야생 코끼리 무리의 지속적인 감소는 동물원, 수의사, 연구자들이 코끼리 보호 최전선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항바이러스제와 집중 치료를 통해 아픈 새끼 코끼리와 어린 코끼리의 생명을 구할 시간을 벌면서, 임상의들이 바이러스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궁극적인 희망은 어린 코끼리에게 치명적인 EEHV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준 백신에 있다.
EEHV란 무엇인가?
헤르페스 바이러스Herpesviruses는 자연계 전반에 걸쳐 존재하며, 어류부터 영장류까지 척추동물을 감염케 한다.
코끼리의 경우, 적어도 19종 관련 바이러스가 동물원과 야생에 있는 거의 모든 성체 아시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를 감염시킨다.
감염은 보통 코끼리가 어릴 때 발생하며, 감염된 동물은 조용히 바이러스를 배출하고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 전염시킨다고 카니조 박사는 말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평생 동안 몸속에 남아 있다"고 카니조 박사는 말했다. "EEHV는 수백만 년 동안 코끼리와 함께 진화했습니다."
많은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EEHV는 일반적으로 코끼리의 몸속에서 질병을 일으키지 않고 잠복한다.
그러나 일부 어린 코끼리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갑자기 활성화해서 면역 체계를 압도하고 혈관을 손상시키는 급속하고 종종 치명적인 출혈성 질환을 유발한다.
그 결과, 무기력증과 식욕 부진과 같은 첫 증상이 나타난 후 12~72시간 이내에 쇼크, 장기 부전, 그리고 때로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이 출혈성 질환은 북미 지역에서 1세에서 14세 사이 아시아 코끼리 사망 원인의 약 75%를 차지한다.
바이러스 감염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베일러 의과대학Baylor College of Medicine 미생물학 및 바이러스학 교수이자 인간과 동물, 특히 코끼리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폴 링Paul Ling 박사는 말했다.
링 박사는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없다. 포트워스 동물원을 비롯한 미국의 많은 동물원에서는 발병 전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바이러스 수치를 모니터링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진단 및 치료 발전으로 코끼리의 EEHV 출혈성 질환으로 인한 치사율은 2013년 83%에서 현재 약 50%로 감소했다. 이러한 치료법에는 항바이러스제, 항생제, 수액 요법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댈러스 모닝 뉴스(The Dallas Morning News) 보도에 따르면, 2023년 댈러스 동물원 7살짜리 아프리카 코끼리가 여러 약물, 수혈, 줄기세포 치료를 포함한 집중 치료를 거의 2주 동안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이 코끼리의 죽음과 다른 어린 코끼리들의 죽음 때문에 과학자들은 EEHV(코끼리 EHC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백신에 주목한다.
중증 질병 예방
2024년 말, 레이디 버드의 이복형제인 트래비스Travis와 친형제인 브라조스Brazos는 베일러 의과대학 링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백신을 접종받았다.
일부 코로나19 백신과 마찬가지로, 이 백신은 어린 코끼리의 면역 체계가 EEHV에 대한 항체를 생성하도록 돕는 mRNA 백신이다.
특히 새끼 코끼리가 젖을 떼는 시기처럼 어미 젖을 통해 얻은 항체가 감소하는 취약한 시기에 효과적이다.
링 박사는 이 백신이 코끼리의 EEHV 출혈성 질병을 예방하거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감염되지 않을 정도의 완전한 면역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우리의 목표는 중증 질병과 사망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신의 주요 목표입니다."
현재 이 백신은 주로 아시아 코끼리를 감염시키는 EEHV 변종을 대상으로 한다. 링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아프리카 코끼리를 감염시키는 EEHV 변종에 맞춘 백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다른 연구자들은 각기 다른 백신 전략을 추구한다.
영국 서리 대학교 수의 면역학 교수인 팔코 스타인바흐Falko Steinbach는 바이러스 감염과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백혈구인 T 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EEHV 백신을 개발 중이다.
슈타인바흐 박사는 영국 체스터 동물원Chester Zoo의 건강한 성체 코끼리 세 마리를 대상으로 백신 시험을 진행했으며,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번 회의 참석자들에게 밝혔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다음 단계로 어린 코끼리를 대상으로 백신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포트워스 동물원에서는 트래비스와 브라조스 외에도 곧 레이디 버드도 백신 접종을 받을 예정이다.
레이디 버드는 어미 젖을 떼면 접종을 받게 될 것이라고 카니조 씨는 말했다.
10년 전 동물원에 부임한 이후, 카니조 씨는 비록 아직 실험 단계이긴 하지만 백신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브라조스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아, 이제 EEHV(코끼리 EHV) 걱정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북미 EEHV 자문 그룹 일원이며, 이 바이러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브라조스가 백신을 맞아서 마음이 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