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이 켈트족한테 경고 의미로 사용한 참수한 머리 발견

고대 요새 성벽 근처에서 발견된 유골은 정복당한 적에게 가해진 로마인들의 잔혹한 만행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고학자들은 스페인의 2,000년 된 요새 성벽에서 유골 한 개체를 발견했다.
유골을 조사한 결과, 한 지역 병사가 로마군한테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로마군은 그의 머리를 참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 의미로 요새 성벽에 올려놓았다.
기원전 1세기,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기 위해 현재 스페인 북부에 거주하던 사나운 켈트족 전사 칸타브리족the Cantabri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칸타브리아 전쟁Cantabrian Wars (기원전 29년~기원전 19년)은 초대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Octavian (훗날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알려짐)가 직접 일으킨 전쟁 중 일부다.
이 전쟁 중 로마군은 기원전 25년, 현대 팔렌시아 속주province of Palencia에 위치한 켈트족 요새 도시 라 로마La Loma("언덕The Hill")를 포위 공격하여 칸타브리아족을 물리쳤다.
최근 라 로마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에서 고고학자들은 무너진 요새 성벽 안에서 사람의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

11월 11일 로마 고고학 저널Journal of Roman Archaeology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이 두개골이 켈트 요새를 수호하던 수비병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수비수는 로마군 승리를 상징하기 전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요새 성벽 바로 밖에서 고고학자들은 수백 발 투사체를 발굴해 라 로마 요새가 마지막 순간에 로마군 화살 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칸타브리족과 로마군 간 백병전에서 손상된 것으로 보이는 갑옷과 무기 파편들이 땅에 흩어져 있었다고 기록했다. 로마군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성벽을 허물고 요새를 파괴했다.
연구진은 이 연구에서 사람 두개골이 부서져 요새 구석에 흩어져 있었지만, 방어벽 붕괴와 관련된 잔해층과 함께 발견된 것이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두개골 DNA 분석 결과, 이 두개골은 해당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 남성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구진은 그가 약 45세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들은 무덤이나 나머지 유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개골이 벗겨져 있고, 색깔이 밝으며, 두개골이 조각난 상태이고, 다른 뼈가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연구진은 두개골이 묻힌 것이 아니라 자연에 방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벽 철거 과정에서 두개골이 파손되었습니다." 에로이카 고고학 및 문화유산Heroica Archaeology and Cultural Heritage 소장이자 연구 주저자인 산티아고 도밍게스-솔레라Santiago Domínguez-Solera는 라이브 사이언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는 머리가 몇 달 동안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은 이 남성이 요새를 방어하던 중 사망했으며, 로마인들이 이 유적을 점령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잘린 머리를 성벽 위에 올려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머리는 성벽 옆에 떨어져 로마인들이 요새를 파괴하고 그 자리를 떠날 때 생긴 잔해 속에 묻혔다"고 연구진은 기술했다.
연구에 따르면 로마 군단은 패배한 적의 시체 전체와 일부, 특히 머리와 손을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징벌적 행위는 협박 전략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술하며, 잘린 머리는 "전리품"으로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시의 정확한 상황은 불분명하다.
"머리가 어떻게 노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도밍게스-솔레라가 말했다. "뼈 표면에는 예를 들어 창에 찔렸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진단 흔적이 없습니다."
라 로마에서는 이 잔혹한 포위 공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계획되어 있다.
도밍게스-솔레라는 "올해 [요새] 입구 다른 곳에서 다른 두개골 조각들, 즉 사람 두개골 조각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벌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찾기 위해 이 조각들을 연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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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처벌 징벌을 효수梟首 혹은 효시梟示라 한다. 그 전단계로 머리를 자르는 일은 참수斬首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