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인구 유전체학이 밝혀낸 비밀
앵글로색슨과 켈트, 그리고 바이킹을 넘어: DNA가 밝혀낸 영국 이주 역사의 역동성
by 제이 실버스타인Jay Silverstein,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우리 각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며, 종종 상상 속 조상 계보를 통해 정체성을 추적한다.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문화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생물학적, 즉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안정적인 유전적 유산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인구 유전체학은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서로 얽혀 있는 역사를 드러냈다.
깊고 끊임없는 유산의 섬으로 오랫동안 간주된 영국과 같은 곳에서조차 유전 데이터는 활발한 이주, 혼합, 그리고 문화적 재창조로 점철된 역사를 시사한다.
두 가지 새로운 연구는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에 산 영국인들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이러한 사실을 더욱 뒷받침했다.
선사 시대 영국은 주기적인 대규모 이주와 더불어 당시에는 연속된 지형을 가로지르는 소규모 규칙적인 인구 이동을 경험했다.
기원전 6100년 무렵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과 고립되었고, 이는 후대 역사 기록에서 영국 인구가 상대적으로 고립되었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 관찰자들도 이와는 다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서기 1세기에 활동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영국 부족들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그들의 기원이 게르마니아Germany, 갈리아Gaul, 이베리아 반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론은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관찰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제 인구 유전체학과 고대 DNA 염기서열 분석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인구 및 정치적 변화에 따른 직접적인 조상 재구성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주장을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 기반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 마리나 실바Marina Silva 연구원과 동료 연구진은 최근 영국 전역에서 발견된 1,000개 이상의 고대 유전체를 분석한 중요한 연구를 발표했다.
아직 게재되지 않은 이 연구 논문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로마 점령, 앵글로색슨족 이주, 바이킹 시대, 노르만 정복 등 영국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이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의 유전적 데이터에서 감지될 수 있을까?
답은 복잡했다.
정치문화 격변기였던 로마 시대는 놀랍게도 전체 인구의 유전적 구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로마 시대에 영국에 산 사람들 약 80%는 바로 직전 철기 시대 사람들과 거의 동일한 유전적 구성을 보였는데, 이는 유전적 연속성이 유지되었고 새로운 유전적 대체는 없었음을 시사한다.
로마 엘리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한 도시 중심지에서조차도, 전체 인구는 압도적으로 지역 고유의 유전적 특징을 유지했다.
반면, 서기 410년 무렵(로마 지배가 붕괴된 시점)부터 1066년까지의 초기 중세 시대에는 북해 건너편에서 새로운 혈통이 상당수 유입되었다.
연구진은 영국인 샘플을 북서유럽 다른 지역 인구의 유전자 데이터와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유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앵글로색슨족의 이주와 관련된 유럽 대륙 혈통은 영국 남부의 "앵글로색슨" 지역 매장지의 70% 이상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이주는 단순히 문화적일 뿐만 아니라 인구 구조의 형태에 흔적을 남길 만큼 큰 규모의 인구학적 변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조차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서기 700년경부터 1000년경까지, 유럽 대륙의 영향이 영국에 다시 한번 나타나는데, 중앙 유럽(프랑스와 라인란트 지역으로 추정)과, 그보다 적은 수의 남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바이킹 시대는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유전적 흔적이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북부와 동부 지역에서 스칸디나비아계 유전적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초기 중세 이주에서 나타나는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66년 노르만 정복이 주로 엘리트 계층에 의한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일반 인구의 유전체에는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체 유전체 조상 프로필은 정복 시기를 아우르며, 급격한 인구 교체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모든 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인구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노르만 정복은 상대적으로 소수 개인이 엘리트 계층을 대체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사전 공개 연구는 이러한 현상이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더 자세한 시각을 제공한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템피 캠퍼스 플라비오 데 안젤리스Flavio De Angelis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서리Surrey 지역 프라이어리 오차드Priory Orchard에 있는 시골 공동묘지에 초점을 맞춰 노르만 정복 이전과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묻힌 사람들을 조사했다.
다시 한번, 결과는 놀랍다. 1066년 이후 뚜렷한 유전적 단절이 나타나는 대신, 정복 이전과 이후의 매장 유적 모두 동일한 유전자 클러스터에 속하며,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인구 변동의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성은 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며 조상 구성 요소의 통계적 유사성에서도 드러난다.
오히려 이 공동체는 북해 세계 전역에 걸친 훨씬 더 긴 상호작용의 역사를 반영한다.
그 조상에는 앵글로색슨 족 관련 요소, 바이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당한 스칸디나비아 유입, 그리고 소규모 유럽 대륙 유입이 포함된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은 노르만 정복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으며 정복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노르만 정복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역사적 연대표상으로는 극적인 단절의 순간처럼 보이는 것이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연속성으로 나타난다.
유전자는 인구의 역사를 알려주고 이주로 인한 지역적 영향을 감지하지만, 지정학적 상황과 깔끔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중요한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문화적, 정치적 변화가 반드시 인구학적 변화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연속성이나 반복적인 인구 교체의 역사가 아니라, 인구 구성보다는 제도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들로 인해 단절된, 장기간에 걸친 혼합의 역사다.
초기 중세 시대의 이주처럼 깊고 측정 가능한 유전적 유산을 남긴 이주도 있지만, 역사적 서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희미한 흔적만을 남긴 이주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매우 두드러진다.
유전적 변화의 규모가 역사적 관심의 규모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유전학 데이터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영국 제도 전역의 현대 인구는 단일하고 균일한 집단을 형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겹치지만 구별되는 여러 계통으로 나뉘는데, 이는 각기 다른 지역적 역사와 다양한 정도의 과거 이주를 반영한다.
이러한 양상은 고대 기록과 유사하지만, 모든 지역에 똑같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다.
웨일스와 아일랜드는 초기 인구와의 연속성이 강하게 유지되는 반면, 잉글랜드는 초기 중세 시대 북유럽 이주와 관련된 조상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코틀랜드는 장기적인 연속성과 이후 스칸디나비아의 영향을 모두 반영하여 중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이가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 제도의 모든 인구는 깊은 공통 조상을 공유하며, 그 위에 지역별로 다른 영향을 미친 여러 겹 이주 역사가 겹쳐졌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조는 이러한 겹겹이 쌓인 역사의 산물이며, 고립되거나 "순수한" 인구의 생존이 아니다.
결국, 뿌리내리고 경계가 명확한 정체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는 연결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영국인의 정체성은 다른 모든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에 걸친 이동, 상호작용, 그리고 적응을 통해 형성되었다.
현대의 유전자 분석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까지 보여준다.
역사는 이주를 예외적인 현상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음을 드러낸다.
(출처: The Conver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