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개무시한 고구려 강역 동쪽 끝
"그 땅은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를 지나니 [동서가] 2천리요, 남쪽은 백제와 인접하고 북쪽은 말갈靺鞨과 이웃하니 [남북이] 천여 리다."
북주北周, 557년~581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마지막 북조北朝 왕조로, 선비족 우문씨宇文氏 왕조 북주北周(557~581)의 정사로 기획한 주서周書 중 이역열전異域列傳 중 고구려 열전 한 대목이라,
이 주서는 백제열전까지만 있고 신라 열전이 없으니, 이는 신라와 직접 접촉이 없는 데서 비롯했다 보아야 할 듯하지만 이것도 설명이 좀 이상한 것이 분명히 저에서는 신라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각설하고 이를 포함한 중국 역대 정사 한반도 관련 열전을 번역하고 주석한 중국정사조선전은 저 항목에다 注하기를 "中國 正史 중 高句麗의 경역境域 표시에 있어서 삼국 정립鼎立의 형세形勢를 반영하는 것은 이 기사가 처음"이라 했으니, 이 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았다 하겠다.
말마따나 저 기사는 고구려를 기준으로 신라와 백제와의 경계 표시를 기술했으니, 이것이 훗날 다른 정사에서는 조금씩 변동이 있게 된다.
저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대략하는 고구려 영역 크기를 동서 2천리에 남북 1천리라 했다는 점이니, 이 크기는 실상 우리가 아는 그 고구려 크기가 아니다. 생각보다 무척 작다.
나는 저 크기가 실상에 부합한다 보거니와 그런 맥락에서 고구려 강역은 실상 절반은 날려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통삼한 직전 신라 강역 크기를 남북 2천리, 동서 1천리라 했으니, 단순 비교하면 땅덩어리는 대략 신라 두 배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인구인데, 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또 하나 우리가 부릅뜨고 보아야 할 대목은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라는 대목이다.
눈이 있다면 봐라! 동쪽 경계가 동해 바다라는 언급 어디에도 없자나?
이것이 그 이전 고구려 동쪽 경계 기술과 다 맥락이 닿잖아? 그 이전 시대에는 동쪽으로 책성에 이른다고만 했지 결코 바다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았자나?
그리고 왜 동쪽 경계가 신라인가?
아래 진흥왕 순수비랑 평양성 위치를 표시한 지도 보자!

저때가 진흥왕 시대라, 딱 북주 존속 시대다!
맞자나!
고구려 동쪽이 신라잖아?
한데 왜 이런 말 일언반구 논평조차 없니?
다시 말한다.
고구려는 동해안으로 진출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