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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는 법, 일찍 죽는 행복을 누린 사도세자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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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한 장면

 
정조 이산의 죽은 생아버지 사도를 향한 행보는 애틋하고 처절하기도 한데, 도대체 왜 이럴까?

아버지와 아들은 생득으로 저리 애틋할 수는 없다. 뭐 말로야 조선시대 각종 문집에 죽은 아비를 처절하게 부르고 아버지 사랑 운운하지만 천만에!

그때도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수컷은 수컷끼리 오붓하게 어울려 살 수가 없는 구조이며, 그때도 아버지 말은 죽어도 아들이 안 들었다.

정약용이 아들 혼내는 편지들 봐라! 입만 열면 잔소리라, 그래 근엄한 아버지 말씀이라 해서 정학연을 비롯한 아들들이 그 말씀 비름빡에 새기고 생활지침으로 삼았을 것 같은가?

개야 짓어라 기차는 그래도 간다! 

딱 이거였다.

한 귀로는 그래 말씀 옳아요 듣는 척만 할 뿐, 제 갈 길 제가 찾아갈 뿐이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보면 정조의 행보는 놀랍기 짝이 없는데, 즉위하고 나서 아버지 무덤 거창하게 왕릉급으로 맹글고, 심지어 그 자리 옆에다가 나중에 퇴임하고선 연구실로 쓰겠다고 해서 국고 탕진하며 만든 것이 바로 화성이다.

그 옆자리 비워 놓고선 그에다가는 엄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내도 죽어 아부지 엄마 곁으로 가겠다 해서 공동묘지 만들고 그 공동묘지가 무덤들만 있으면 쓸쓸하기 짝이 없으니 백성들 바리바리 실어다가 날라서 죽어 저승에 가서도 왕 노릇하겠다고 구상한 것이 바로 화성이다.

왜 저리 애틋했을까? 효성이 극심해서? 

웃기는 소리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사랑받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일찍 죽어야 한다. 아니 그보다는 제때 죽어야 한다.

정신병이 돈 사도는 걸핏하면 사람들을 죽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한 아비 영조가 뒤주에 가두어 굶어죽이니 이때가 1762년, 당시 세손 정조는 나이 겨우 11세, 만 10세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모른 채 아버지가 어느날 훅 가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실은 그로서는 축복이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있었던들 우리가 아는 정조의 시대는 없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정조보다 더 오래살았을 수도 있다. 

샤르트르였던가? 아버지가 일찍 죽는 축복을 누렸다고?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적당히, 그리고 제때 죽어줘야 한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것도 죽고 나서 대략 10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아들한테서 눈물을 제물로 받는다. 

것도 받지 못하고 지하에서 원혼으로 떠도는 아버지 귀신이 얼마나 많던가?

비정하다 하는데 비정하기는?

동물의 왕국 봐봐. 

힘없는 아비는 쫓겨나고, 쫓겨난 아비는 홀로 들판을 떠돌다 결국 굶어죽거나 하이에나한테 밥이 되어 사라진다. 

죽음이 그 자신한테는 비극이었으나, 여러 모로 이 이른 죽음은 그에게는 축복이었다. 

죽어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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