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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토지를 떼간 개심방의 실체는? by 김태형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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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대중9년>명 석각과 관련해서 새롭게 연구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개심방開心房 토지 귀속문제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사찰에서 '房'이 어떤 성격이냐는 것이다.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보면 암자 정도로 보는 사례도 있지만 西去房(황룡사), 天長房(부석사), 松花房(김유신), 不思議房(진표), 國師房(迎如, 실제사)과 같은 기록에 등장하는 방과  성격상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관룡사와는 별개로 개심방에 많은 토지를 소속시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원종법사는 또 누구인지.

이와는 별개로 관룡사에 있는 두 석불의 경우 용선대는 아미타불, 약사전 불상은 미륵불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뭐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 본다.

***


김태형 선생은 송광사성보박물관 재직 중인 불교사학도다.

그의 말마따나 房을 단순 암자로 처치해선 곤란하다.

나는 저 방이 해당 사찰의 시조 중시조 혹은 조실 방장이 居하는 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이른바 조사전 조사당에 견줄 그런 배타적 특권이 있는 곳 말이다.

 

 

앞 사진은 법천사를 중흥한 지광국사 현묘를 위한 제사 공간이다. 혹 이런 공간을 일러 房이라 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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