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의 對 백제 정벌군 발동 시점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 본기와 고구려 장수왕 본기를 보건대, 고구려가 백제를 응징하겠다고 군사 3만 명을 발동해 그 왕도 한성을 함락하고, 8천 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그 왕 개로는 아차산 아래서 참수한 시점이 장수왕 재위 63년, 개로왕 재위 21년 가을 9월이었다.
이 전쟁은 백제의 종묘사직을 실상 끝장냈다.
저 전쟁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번 고찰했거니와, 이번에는 그것을 확대해 그 발동 시점으로 가을 9월을 드러내어 왜 이 시점이 이 전쟁을 바라볼 때 중요한지를 다시금 강조하고자 한다.
가을 9월이면, 양력 10월 내지 11월이라, 추수가 끝난 시점이다.
당시 고구려 도읍은 평양, 백제 도읍은 지금의 서울 송파 일대라, 이 당시 기후사정도 고려해야 하겠는데, 지금은 그것까지 고려할 여지는 없어, 기후 패턴이 지금의 그것이랑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기반에서 출발한다.
왜?
저 무렵 삼국본기와 동시대 중국기록을 찾아봐도 9월이면 늦가을이요, 추수가 끝난 시점이며, 그것이 지나 10월 이후에는 한발이 온다는 기록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는 일본서기 기록을 보태면, 7일낮 7일밤이 걸려 왕도 한성 양대 축인 북성을 먼저 치고서, 다음으로 남성을 들이쳐서 그곳을 함락하고는 승리를 선언하고선 복수는 끝났다! 를 외치고선 그대로 군대를 돌려 쏜살같이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 전쟁에 고구려는 장수왕이 친정했으니, 저때 장수왕 나이 아마 여든인가였을 것이다.
산송장이나 다름 없는 이 노인네가 왜 이런 복수를 칼날을 갈았는지는 앞선 글에서 증명했거니와, 그렇다면 왜 군사를 발동한 시점이 9월이라는 사실이 중요한가?
이건 실은 배수진이었다.
9월에 군사를 발동한 까닭은 바로 농번기가 끝난 시점이기 때문이었고, 본격 겨울이 개막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혹은 장수왕으로서는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 전쟁은 어케든 단기간에 끝장내야 했다.
저 전쟁이 한달만 지속되었어도 고구려는 얻은 것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뻔했다. 그만큼 절박했으며, 그래서 어쩌면 장수왕으로서는 자신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추수가 끝난 시점, 그런대로 군량을 넉넉하게 갖추었을 것이고, 더구나, 징발한 군사들이 조 수수 기장 콩 타작을 이미 다 끝내고선 이젠 고스톱이나 치기 시작하던 무렵이라, 이 시점을 고른 이유가 이처럼 중요하지만, 저 전쟁을 탐구한 글 중에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짧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중대성을 제대로 간파한 이를 보지 못했다.
고구려로서는 사실 고전한 전쟁이었다.
7일낮 7일밤이 걸린 까닭이다.
저들은 내심 한 번에 들이쳐서 단 한 번에 백제 왕 목을 따고 싶었겠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만만찮았다.
3만 대군을 맞아 왕도가 7일이나 버틴 힘도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저렇게 버틴 것으로 보아 백제로서도 사전 대비가 나름 철저했던 것이다.
다만, 여러 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비극을 맞고 말았을 뿐이다.
저 시점, 곧 한겨울이 닥치기 직전 저 전쟁을 일으킨 시점은 475년 전쟁을 통해 고구려가 곧바로 왕도 한성을 포함해 옛 백제 영역 한강유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에 대한 웅변하는 증언이다.
고구려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봄철에 군사를 일으켰으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한겨울을 앞두고 군사를 일으켜서 그 점령한 지역을 지배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현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사를 주둔해야 하고 그 군사는 본국에 갖다 들이대는 막대한 군량 장비로 먹어 살려야 하는데, 그렇게 장악한 지역에다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군사를 얼마씩 주둔해야 하는가?
더구나 한겨울에 누가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전쟁을 끝낸 군사들은 추위가 닥쳐오기 전에 곧바로 귀국해서 아들딸 마누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서 마을회관 모여 군고구마 감자(그땐 이런 식료가 없던 시절이기는 하나)나 구워먹고, 백제 정벌 영웅담이나 이야기해야 한다.
겨울은 특히 북쪽이 더 매섭다. 우리야 잠깐잠깐 다녀오기는 하지만, 겨울에 고구려가 터잡은 동북지역 다녀봐라!
암것도 못한다. 영하 30도를 내려가는 그 동토에서는 사람도 동면해야 한다.
그런 겨울에 군사를 발동한다? 어떤 미친 놈이 그딴 짓을 한단 말인가?
실제 모든 증거가 고구려는 저 전쟁에서 상대 왕 목을 따고 전리품을 챙기고선 쏟살같이 본국으로 도망갔다 한다.
이 모든 증거를 거부하고선, 고구려가 475년을 시점으로 한강을 대략 80년간 지배했다고 강짜를 부리는 일이야말로 유사역사학이고 사비이역사학이며 환빠 역사학이다.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1)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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