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이모저모

오직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실상을 왜곡한 어용화가 김홍도, 타작도의 경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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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아마 타작도? 뭐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물론 그 원저자 김홍도는 아무런 설명도 붙이지 않았다.

왜?

모본母本이기 때문이다. 

저런 풍속도가 남은 이유는 최종본은 화려한 채색도였겠지만 모조리 사라지고 없는 대신, 초고본이라 해서 김홍도 본인이 간직하던 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기적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저 곰방대 물고 불알 늘어지게 개폼 잡는 이가 지주다. 

지주 한 놈에 노비가 몇 명인지 봐라.

여섯이다. 

더욱 주시할 지점이 노비 여섯이 전부 즐거운 표정이라는 사실이다.

단원 풍속도는 다 저렇다.

노비 농민이 다 즐겁게 일을 한다.

음풍농월, 태평성대다.

왜 이런 구도를 잡았을까?

저 그림은 독자가 딱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가?

왕이다!

김홍도는 어용화가다. 

어용화가의 임무는 딱 하나다. 

구중심처 임금이 민정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그것을 구상화해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 즐겁다. 

저 풍속도는 당대 이른바 민중의 생활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삽화 혹은 파노라마가 아니다.

어용화가답게 실상을 왜곡 과장 축소한 그림이다. 

임금이 보시는 그림이므로 그래서 만 백성은 노비건 나발이건 심지어 개새끼 닭새끼까지 즐거워야 한다.

왜?

그래야 태평성대가 완성하므로.

텍스트건 그림이건 나발이건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독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 독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그 텍스트의 기념비성을 파헤치는 지름길이다.

단원 풍속도 무수한 연구가 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저 문제, 곧 독자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았다. 

나아가 저 지주 한 명에 노비 여섯.

저것이 김홍도가 살던 시대 인구구성이다. 

양반 한 놈에 노비가 여섯인 사회가 조선후기다. 

정작 문제는 역사학.

저 한 놈 공방대 문 지주 양반 한 놈을 위한 온통하는 역사학이라,

말로는 민초를 내세운다 하지만 민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그나마 요새는 고문서 연구니 해서 이쪽에서 조금 그런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만,

저 몰명화沒名化한 노비와 농민들이 주체로 서는 역사를 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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