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을 키운 건 팔할이 강단사학이다

기성 강단사학에서는 이른바 유사역사학이니 사이비역사학이니 공격하는 재야사학이 왜 유독 고대사 혹은 그 개막 직전 선사시대에 집중하는가는 여러 번 다뤘지만 이참에 다시금 확실히 정리하기로 한다.
첫째 기록의 엉성함이다.
한반도 고대사를 어디까지로 규정할까 하는 논란이 없지 않겠지만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 멸망까지로 본다면, 이 시대를 증언하는 문헌이라 해 봐야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일본서기를 필두로 일본문헌, 그리고 조선전이며 외국전이며 하는 외국 관련 열전으로 정리한 중국사서, 그리고 금석문 몇 개가 전부라
이것도 삼국 개막 이전으로 올라가면 거의 깡통 수준이라, 고작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조선열전도 우리가 생각하는 고조선 열전이 아니라 위만조선 열전이며, 더욱 정확히는 기원전 109~108년 한 무제에 의한 우거왕 정벌 사건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아예 증언이 없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고조선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삼국 개막 이전 상황은 아예 기록이 없거나 그나마 있는 것도 편린 수준을 면치 못하는데, 이 편린을 구워삼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런 시대에는 고고학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고조선 연구?
말이 고조선이지 그게 고조선인가?
맨 하는 이야기라고는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식민지시대 이른바 낙랑 유적, 것도 100개 중 99개가 무덤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100년 전 그 엉성한 기술로 발굴(말이 발굴이지 이게 무슨 발굴인가? 보물 주워담기지)했다는 자료를 금지옥엽입네 하면서 말은 고조선이라 하지만 실은 중국 식민정권 연구에 지나지 않는 형편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기록의 엉성함은 결국 강단사학이나 재야사학을 같은 출발선에 놓는다.
지가 박사? 지가 교수? 웃기고 자빠졌네, 어차피 보는 자료, 이용하는 자료는 너나 내가 같다.
같은 자료 두고서 요리하는 방법에 차이를 보일 뿐이니, 그렇다 해서 저런 데를 전문으로 공부했다는 박사입네 교수입네 하는 자들 수준이 유별난가?
천만에.
어디서 등신도 그런 등신들만 모아놔 놨는지, 고작 하는 짓이라고는 100년 전 일본 친구들이 조사했다는 그 자료 하나 더 발견했다고 만세 부르는 놈들이니 이 얼마나 한심한 작태인가?
그런 까닭에 자연히 재야사학을 키운 두번 째 힘은 열정 혹은 덕후 하나로 무장한 재야사학도들과는 전연 차별성이 없는 기성 강단사학이라 봐야 한다.
멍청한 강단사학이야말로 재야사학을 키운 팔할의 힘이다.
이 친구들이 나름 지들 열정을 쏟은 대목이야 인정하겠다만, 백날 파면 뭐하나?
그렇게 고생해서 쏟아낸 연구성과라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이 딴 걸로 무슨 아마추어 역사학도들과 무슨 차별성이 있겠는가?
고조선 연구하라 했더니, 지난 백년, 혹은 지난 반세기 고작 이 친구들이 나름 전문성을 살리겠다고 한 짓이라고는 미송리 토기 판 일밖에 없다.
미송리 토기?
한때는 고조선 표지유물이라 해서 딥다 반세기 넘게 미송리 토기를 팠으나, 나는 도대체 그 연구라는 것 볼 때마다 저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도대체 미송리 토기 무엇을 연구한다는 알지도 못하겠고, 또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어냈는지 알 수가 없다.
말해봐! 미송리 토기가 그래서 어쨌다고? 도대체 미송리 토기 무엇을 어찌 연구했는데?
그러니 이 얼마나 웃기는가? 이 웃김이 꼭 나한테만 해당하겠는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역사덕후들한테는 얼마나 더 웃기겠는가?
여담이나 그렇게 디립다 고조선이라 해서 더 디립다 판 미송리토기 지금은 어디 가 있는가?
뭐 일률로 논할 수는 없겠지만 요새 흐름을 보면 미송리 토기는 고조선 표지 유물이 아닌갑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게 열라 팠는데 너무나 허망한 결론 아닌가?
뭔데?
저 산 열심히 정상에 뭐가 있다 해서 올랐는데 올라보니 "이 산이 아닌가벼?" 딱 이거 아닌가?
비단 미송리 토기뿐인가?
그 하나하나 내실 따져들어가면 한심함 천지다.
역사덕후들이 조금만 들여다 보면 기성 강단사학이 구축한 역사학이 x도 아님을 단박에 아니, 이 x도 아닌 틈바구니가 바로 재야사학이 파고드는 창구다.
재야사학을 키운 것이 환단고기?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재야사학을 키운 팔할은 비과학 논리비약으로 점철한 기성 강단사학이다!
재야사학을 키운 세 번째 힘은 정보의 평등성이다.
앞서 말한 국내외 쪼막디 만한 정보들은 모조리 현재 웹을 통해 무료 공개되는 중이다.
모든 한국 고대사 자료? 웬간한 건 키워드 하나로 내가 내 방구석에서 검색 하나로 주르륵 뜨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성 강단사학이 이런 자료들 공개를 애초에 꺼렸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 뜬다.
오직 고고학 자료만이 여전히 접근이 제한되는 형편이나 이것도 맘만 먹으면 언제건 구한다.
고조선 관련 고고학 자료라 할 만한 것들은 북한에서는 단군릉 발굴로 맛탱이 가서 그 즈음 이후에는 볼 것도 없고, 식민지시대 자료랑 60~70년대까지 자료인데 그 역시 대부분이 접근가능하거니와
문제는 요서 요동지방 중국 고고학자료라, 이것도 맘만 먹으면 언제건 입수가능하다.
바이두를 필두로, 웬간한 자료 안 걸리는 게 없다.
중국 쪽은 저작권 개념이 여전히 약해서 웬간한 상업용 출판물로 다 뚫려서, 이런저런 돌아가기 방식으로 접근하면 원문 다 얻는다. 누군가는 올려놨더라!
재야사학? 강단사학?
솔까 고조선 중심지 논쟁 말고 뭐가 더 남았어?
내가 볼수록 웃기는 게 강단사학은 재야사학에 사시나무 떨듯 하지만, 결론을 보면?
참말로 이상한 게 결국 재야사학을 강단사학이 그대로 다 따라갔다는 사실이다!
고조선?
솔까 평양 황해도 말고 언제 너희가 요동 요서를 봤어?
단 한 놈도 한반도 밖은 쳐다보지 않다가 이제 야금야금 요동 요서로 가서 고조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강단사학이 그렇게 하기 훨씬 전에 재야사학은 이쪽을 파고 들고 있었다.
그렇게 욕하는 재야사학을 은근슬쩍 따라간 이 강단사학 문제는 심각한데, 혹 나중에 시간 나면 이 문제도 짚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