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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1) 백화수피는 자작나무인가?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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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천마도 장니를 수습하는 장면이라, 물론 내가 어디 이 문제 하나만으로 지난날을 고민하거나 허비했겠는가?

다만 이 장니 문제에 국한하건대 대략 다음과 같은 의문의 궤적을 밟았다 할 수 있겠다. 

첫번째 시기는 저 재료가 자작나무인가 아닌가였다. 

저 자작나무는 지금은 인공 식수로 한반도 식생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북쪽 산악지대에서나 자생하지 한반도 중남부에서는 자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적인 식물학계 견해다. 

물론 구체로 보면 경북대 산림자원학과 박상진 선생이 이 주장을 계속 펼쳤거니와, 설혹 한반도 중남부에서 난다 해도 해발 천 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애초에 나는 저 그림을 그린 소재가 자작나무가 아니라는 데 심증을 두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훗날 저 실물 자료가 자세히 공개되었으니, 그것을 보고선, 비록 내 육안 판정이기는 했으나 자작나무가 확실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 사이 나는 가는 데마다 자작나무 껍질로 각종 실험을 했으니, 경복궁 경내 자작나무는 나 때문에 껍띠가 홀라당 다 벗겨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나로서는 나름 실험을 했고, 무엇보다 몽골과 연해주 지역을 갔을 적에도 유심히 관찰하고 자작나무라는 나무 껍떼기는 확 다 벗겼으며, 몽골에서는 특히 자작나무 유물을 세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해서 안목이 나름대로 섰고, 그 안목에 따라 다시금 신라 유적 출토 이른바 백화수피를 검토하니 틀림없이 자작나무였다! 

그렇게 관찰하고 촬영한 사진을 박상진 선생께 보내드리고선 아무래도 자작나무 맞는 듯합니다 하고 여쭈니, 당신이 보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말씀하신 기억 또렷하다. 

이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 특기해야 할 점이 두 가지다. 

첫째 신라시대 필기 회화도구....종이 사용이 일반화하지 않았거나,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설혹 그것이 아니라 해도 회화 도구로써 자작나무 껍질은 적어도 지배층에서는 요긴하게 사용했다는 강력한 추론을 받침한다. 

이 필기 도구 문제의 심각성을 내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짚은 글을 나로서는 못 봤다. 

이 첫번째 의문의 두번째 중대성이 자작나무 산지다. 

천마총은 압도적인 견해로는 6세기 초반 무렵 만든 무덤으로 보거니와, 우리가 잊은 점이 있다.

자작나무 자생 군락지와 관련해 당시 신라는 일찌감치 함경도 동해안 유역은 장악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신라가 함경도까지 치고 올라간 시점은 내물왕 무렵이요, 늦어도 눌지 자비왕 무렵에는 확실히 장악했다. 

고대사학계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진흥왕 시대 함경도 진출? 개소리다. 신라는 훨씬 더 일찍 동해안 유역을 함경도까지 장악한 상태였다. 

저 자작나무 재료는 함경도에서 공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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