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한국사 치욕의 현장이며 철거되지 못한 바스티유 감옥이다

왕조 교체 때 가장 새로운 왕조가 맨 먼저 하는 일이 종묘를 쓸어버리기였다.
물론 신흥 왕조가 타도한 전 왕조를 위해 구석데기 일부를 떼어주고선 거기다 쥐꼬리 만한 사당 하나 만들어주고선 때마다 그 선조를 제사지내게 하는 일은 상례였다.
신라를 엎은 고려도 그랬고, 고려를 엎은 조선도 그랬다.
왕조를 끌어 엎고 새로운 국가 새로운 왕조가 출범할 때 가정 먼저 하는 일은 종묘 허물기였다.
왜?
구 왕조 종묘를 허물지 않고서는 새로운 왕조 출현을 상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맨 먼저 이 종묘를 쓸어엎었다.
불태우기는 아깝다 해서 보통은 그것을 헐어 목재랑 기와, 그리고 주초는 재활용했다.
왜?
아깝잖아?
왕궁 역시 당연히 그랬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은 왕국과 종묘를 쓸어버리는 일을 말했다.
예서 관건은 왕릉이라, 이상하게도 이 왕릉 만큼은 차마 건딜지 않는다는 불문률이 있었다.
그래서 대체로 무덤은 그대로 남겨두고 지방관한테 때마다 관리도 하게 했다.
당연히 이 점에 비춰 보면 쓰러진 조선왕조는 그 멸망과 더불어 경복궁을 비롯한 4대 궁과 종묘는 쓸려나갔어야했다.
한데 예서 문제가 생겼다.
조선 혹은 대한제국을 대체한 왕조가 하필 대일본제국이었다.
그 병합 조약 본 적 있는가?
내가 늘 말하지만 조선왕조는 결코 1945년 8월 15일까지 망하지 않았다.
그 왕조는 존속했다.
무슨 말인가?
한일합방조약을 보면, 대일본제국 군주가 대한제국을 일본제국에 흡수하되, 그 왕실은 대일본제국 황실로 끌어들이고, 그 왕은 조선제후로 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제후가 바로 조선왕이었다.
간단히 말해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 황제는 대일본제국 군주 산하 조선제후국왕이 되었다.
그래서 망하고 나서도 순종은 죽을 때까지 조선왕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친왕 이은.
이 양반은 고종의 서자로, 1910년 8월 29일부터 1926년 4월 25일, 곧 순종이 죽을 때까지 이왕세자였다.
본래는 이왕세제여야 하겠지만, 아무튼 형이 죽을 때까지 세자로 있다가 형이 죽자 냅다 조선왕에 책봉된다.
조선총독, 대단하게 이야기하지만 이 왕세자 혹은 조선왕 앞에선 무릎을 꿇었으며 실제 모든 의전서열에서 항상 뒤였다.
왜? 차기 왕위 계승권자였으니깐.
그래서 이은은 1945년 8월 15일까지 계속 조선왕이었고, 당시에는 창덕궁 이왕李王 정도로 일컬었다.
한데 이 지위가 놀랍게도 1947년 5월 3일까지 계속된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는 놀랍게도 1945년 8월 15일을 뛰어넘어 1947년 5월 3일까지 존속했다!
이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이 망했는데도 왜 궁궐과 종묘가 살아남았는가?
그 결정적인 해답이 여기에 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했지만, 왕실은 그대로 존속시켰다.
왜 일본이 이랬는가는 묻지 않아도 답은 자명하다.
그래야 반발이 적다 생각했기 때문이고, 무력으로 정벌한 것도 아닌데 애꿎은 짓 벌여서 화근을 부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저들이 총칼을 앞세워 조선을 정벌했다지만 일본으로서는 이렇게 순조롭게 피도 한 방울 안 흘리고 이웃 국가를 병합했으니 보복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찾아와서 엎드린(모양새가 그랬다는 뜻이다) 대한제국 황제를 살려두어야지 않겠는가?
지발로 찾아 기어들어왔는데 죽여야겠는가? 얼마나 이쁘고 귀엽겠는가?
궁궐과 종묘가 살아남은 이유가 이것이다.
조선왕, 그리고 조선왕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왜 굳이 왕궁을 허물고 종묘를 넘겨버리겠는가?
조선 혹은 대한제국은 가장 이상적인 수순으로서는 공화정 혁명이 일어나 타도되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본제국에 병합되었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4대 궁과 종묘가 살아남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것이 어찌 dark heritage 아니고 무엇이랴?
정상적인 역사발전 궤도라면 조선왕조는 공화정 혁명에 타도되어야 했으며, 그 타도 과정에서 왕궁과 종묘는 불타거나 헐어버려야 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공화정 혁명, 일본으로 보자면 메이지유신, 중국으로 보자면 신해혁명과 같은 과정을 피함으로써 극적으로 왕궁도 살아남고 종묘도 살아남게 되었다.
살아남은 경복궁, 살아남은 종묘는 실은 한국사 치욕의 현장이며 철거되지 못한 바스티유 감옥이다.
안중근이 위대한 이유는 그 어이없는 멸망 과정에서 끝까지 총을 잡고 맞선 유일한 조선의 무장투사였기 때문이다.
종묘는 안중근 혹은 안중근들의 총알에 날아갔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