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물에 동동 띄워 내려보낸 조선 자기들

조선시대 광주분원 정확한 위치는 어찌 되는지 모르겠으나 지도에 광주 조선백자 요지라 표시한 지점 어간일 것이다.
저에서 생산한 자기들을 서울로 실어날았을 것이니, 예서 관건은 교통.
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속도로가 없었다.
설혹 있다한들 산지가 너무 많아 그 무거운 짐짝을 실어나를 만한 육상교통은 꽝인 구석기 사회가 조선이었다.
도로다운 도로를 닦은 적이 없는 한민족이다.
단군조선 이래 이땅의 통치자 혹은 권력으로 고속도로 건설할 생각을 한 놈은 한 놈도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일본제국과 박정희야말로 혁명아라, 저들은 단군조선이래 단 한 번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철도니 고속도로를 선사했다.
박제가의 수레 이용론?
한심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도로가 있어야 수레가 다니지 않겠는가?
도로가 없는데 무슨 수레란 말인가?
개발의 편자에 지나지 않는 탁상공론이다.

육상교통, 도로를 포기 방기한 저들한테 유일한 희망은 수로였으니, 그 수로 역시 배경이 민물이냐 바닷물이냐에 따라 갈라졌으니 왜 조선왕조가 지금의 이천이며 광주며 여주니 하는 데다가 분원을 만들었겠는가?
첫째 님비 신드롬 때문이니, 매연 발생이 심한 저와 같은 산업단지를 서울이나 혹은 그 가까운 지점에 만들 수가 없었다.
둘째 수로 교통이니, 저에다가 만든 이유는 아주 간단해서 한강을 이용한 수로 때문이었다.
저에서 생산한 자기가 한강 물길을 따라 내려왔는데, 이것이 무엇보다 이점이 있어 서울에서 생산한 자기를 한강을 역류하는 흐름이 아니라 상류에서 생산한 그 무거운 짐짝 자기를 배를 통해 실어날랐으니, 흘러내려는 강물을 따라 실려 보내면 그뿐이었다.
배? 변변찮은 배도 없어 뗏목 수준이었다.
내친 김에 한강 어딘가에는 분명 저리 나르다가 침몰한 자기 더미가 쳐박혀 있을 텐데, 희한하게도 아직 그런 발견 소식은 들려오지 아니한다.
그에서 생산한 자기가 서울에서 상륙한 지점이 구체로 어디였는지는 내가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여타 공물을 보면 대개 지금의 마포 일대 서강 혹은 광흥창 같은 데였으니, 이런 데서 하적해서 필요한 곳으로 육로로 실어날랐을 것이다.
저 수송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조선시대 물자를 유통하는 육상 수송 수단은 놀랍게도 사람 어깨였으니 보부상이 그들이라, 바리바리 지게에 싣고서 고개를 넘어다닌 것이다.
이것이 불과 백년 전 조선이었고 그런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고 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