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서 떼죽음한 아프리카 해방 노예는 어디에서 왔나?

약 200년 전, 수천 아프리카 노예가 노예선에서 해방되어 세인트헬레나St. Helena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새로운 화학 분석을 통해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밝혀졌다.
19세기 대서양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에 묻힌 수만 해방 아프리카인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화학 및 치아 분석을 통해 이들 중 150명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는지 밝혀졌다.
1807년 영국 제국이 노예 무역을 금지하고 왕립 해군이 이를 집행하면서 약 27,000명 해방된 노예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이송됐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해군이 해방시킨 노예들을 내려놓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영양실조와 건강 악화에 시달리던 이들 해방 노예 약 8,000명이 남대서양 이 섬에 상륙한 직후 사망했다.
이러한 매장 유적은 수 세기 후 공항 건설 사업을 앞두고 발견될 때까지 잊혀졌다.

2007년과 2008년에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해방된 노예들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목요일(7월 16일)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은 해방 노예 기원을 밝히고자 152구 치아를 분석해 스트론튬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했다.
스트론튬 동위원소는 핵에 있는 중성자 수가 다른 스트론튬 원자다.
어린 시절 치아가 자라면서 섭취하는 음식과 물에 포함된 스트론튬 동위원소가 치아 법랑질에 축적한다.
연구자들은 사람마다 고유한 스트론튬 비율을 분석함으로써 어린 시절 거주지를 추정할 수 있다.
연구 결과, 해방된 노예 상당수가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에 살았지만, 일부는 내륙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대부분 사람은 서중앙아프리카 해안 또는 해안 인근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는 훨씬 더 내륙 지역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예선에 승선하기 전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강제 이주를 겪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한 사례에서는 19세에서 25세 사이에 사망한 한 남성이 7세에서 9세 사이 어린 시절에 앙골라 내륙에서 해안으로 이송된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그가 7세 무렵에 자란 치아와 9세 무렵에 자란 치아 동위원소 특징을 비교해 이러한 이동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그가 그 시기에 노예로 팔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코펜하겐 대학교 글로브 연구소Globe Institute at the University of Copenhagen 분자 생태학 및 진화학 부교수이자 연구 공동 저자인 하네스 슈뢰더Hannes Schroeder는 라이브 사이언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이주가 노예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슈뢰더 교수는 "안타깝게도 이 개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남성 외에도, 이번 연구에서는 해방된 노예 중 최소 10명이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초기에 이송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슈뢰더는 연구 대상자 중 세인트헬레나 섬에 살아있는 후손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들이 섬에 상륙한 직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한 역사 기록과 20명 DNA 분석을 통해 이들 출신지를 파악했다.
DNA 분석 결과 "가봉과 앙골라 북부 현대인들과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상당한 다양성을 나타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는 섬에 주둔한 영국 해군 병사들 목격담과 일치하며, 포로들 사이에서 콩고어와 벵겔라어 방언을 포함한 여러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보고와도 부합한다"고 덧붙이며 앙골라, 쿠바, 브라질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노예로 끌려간 아이들의 비극"
이번 연구는 노예로 산 사람들 삶에 대해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준다고 연구진은 라이브 사이언스에 전했다.
대서양 노예 무역을 연구하지만 이번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은 유전학자 스티븐 미켈레티Steven Micheletti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조상과 후손에 대한 정보가 역사에서 지워져 버린 노예 제도의 사례들을 조사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사람들 DNA를 분석했더라면 연구 결과가 더욱 풍부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역사학자 데이비드 헤드David Head는 연구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메일을 통해 "노예 상인들이 거래 기록을 남겨둔 덕분에 노예들 승선과 하선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노예들 출신지나 항구에 어떻게 도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다"며, "이번 연구에서 대부분 노예가 해안가 근처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훨씬 내륙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헤드 교수는 또한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노예 상인들이 기록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노예 개개인의 삶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연구를 통해 개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예 상인들이 남긴 기록에는 노예들 삶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많은 노예가 어린 나이에 이송되었다는 연구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노예 상인들이 오랫동안 노동력을 제공할 잠재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을 원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치아를 통해] 이러한 선호도가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노예로 살았던 아이들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연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알렉스 벤틀리Alex Bentley는 이번 연구가 동위원소 데이터와 역사 기록, 그리고 일부 DNA 분석을 결합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벤틀리 교수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인간 치아 법랑질의 스트론튬 동위원소 비율은 궁극적으로 지역 지질을 반영하지만, 어린 시절 치아가 형성되는 동안 섭취한 음식과 물의 생물학적 이용 가능성을 기록한다"며, "따라서 특정 지역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유사한 접근 방식을 통해 미국 노예들 기원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해는 2022년에 재매장되었다.
과학자들과 세인트헬레나 지역 주민들은 유해를 원래 출신지인 아프리카 국가로 송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일부 유해는 어느 나라로 반환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Article Sources
Wang, Xueye et al. (2026) Tracing the origins of St Helena’s liberated Africans. Science. http://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eb3661
세인트헬레나 섬은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는 대서양 절해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