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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동해안 신화, 지도 한 장이면 끝장난다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1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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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에 걸린 한반도 입체지질도 중 함경도 해안을 중심으로 한 세부다. 

나는 계속 고구려가 동해안 해안으로 진출하지 않았다는 말을 강조하거니와 이 지질도를 보면 왜 고구려가 동해안으로 진출하지 않았거나 못했는지 명확하다!

고구려 기준으로 저 동해안은 넘어올 수도 없고 설혹 잠깐 넘어온다한들 배겨낼 수가 없는 땅이다. 

저 험준한 개마고원과 낭림산맥 등등을 넘어 동해안으로?

왜? 뭐하러? 

설혹 동해안으로 넘어온다한들 그에서 해산물 몇 가지는 얻겠으나 문제는 물류 수송 비용이었다. 

넘어가다 산적한테 다 뺏기거나 호랑이 밥이 되고 말며, 무엇보다 하도 시간이 많이 걸려 무사통과한다 해도 가는 사이에 아무리 소금 간을 한다한들 살아남을 생선이 없다!

건어물 혹은 훈제품이나 조금 얻어갔을까?

반면 왜 신라가 저 땅을 아주 일찍이, 적어도 4세기 무렵에는 먹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바다였고 해상수로였다. 

신라는 저 땅을 배를 타고 갔고, 저에서 나는 산물, 예컨대 자작나무 공예품은 배로 경주로 운반했다. 

같은 함경도 동해안이라 하지만 그 처한 위치가 이만치 신라와 고구려가 왕청나게 달랐다. 

그렇다면 왜 신라는 그렇게나 동해안에 집착했을까?

한반도 내륙은 북쪽 혹은 북서쪽은 고구려에 막히고 서쪽은 백제에 막혔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진출구는 바로 저 동해안이었다. 

신라가 북방 문문을 접하는 통로는 고구려가 아니라 저 동해안 루트였다. 

예서 시종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저 함경도 동해안이 무주지無主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 땅은 동예니 읍루니 혹은 물길이니 말갈이니 훗날 여진으로 통칭하는 수렵 채집 기반에 농경을 가미한 민족이 점유한 곳이었다. 

그런 데를 쳐들어가 무력으로 점령하고, 훗날 윤관도 실패한 공고한 현지 통치를 완성했으니, 이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구명해야지 않겠는가? 

무력으로만 짓눌러서는 한계가 명확하니, 과연 저 땅을 신라는 어떻게 장기 지배했던가? 

나아가 저 신라가 장악한 한반도는 언제나 고구려에는 위협이었으니, 고구려가 틈만 나면 지금의 강릉 일대를 침략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또 강조하지만 저 땅은 고구려가 아니었기에, 고구려는 자국 병력만으로는 그 침략을 감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말갈을 조종했다. 

그렇다고 말갈이라고 고분고분 말을 들었겠는가? 반대급부를 요구했다. 

말갈로서는 회복해야 할 고토古土였고, 고구려는 어케든 저 통로를 통해 시종 자신들을 협박하는 신라를 막아서야했다. 

아울러 내가 말하는 이 흐름을 알아야 비로소 지증왕 시대 이사부에 의한 울릉도 점령이 해명된다. 

저 울릉도는 말갈 소굴이었다. 이 소굴을 소탕한 것이다. 

울릉도 상실은 말갈로서는 영영 고토 회복의 꿈을 버리는 좌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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