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免賤은 해방이 아니라 질곡의 시작이었다!


면천免賤..천함을 벗어난다는 뜻으로 대체로 노비 머슴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담 서자 서녀는?
홍길동이 대표일 텐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도 부르지도 못하다가 아버지로 부른다는 뜻은 적자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경우도 면천이라 하는지 모르겠는데 조금 맥락이 다르지 않나 싶다.
조선시대를 배경 삼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면천을 꿈이자 이상으로 설정하는 장면을 자주, 아니 아주 자주 목도한다.
심지어 면천하는 순간 그네들은 감격에 계워 눈물을 한바가지 쏟고선 만세를 부른다.
이 신화는 마침 임진왜란 신화와 곁들여, 그리고 이른바 근대 국민국가의 민주화 열망과 결합해 한 치 흔들림 없이 굳건한 토대를 구축한다.
그랬을까? 저들에겐 면천이 꿈이었을까?
임란이 터지고 왜군이 한양까지 북상하자 지배권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가장 먼저 장예원이 불탔다.
노비문서를 관리하던 기관이라 저 불을 지른 사람들은 왜군이 아니라 조선사람이었다고 적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비 머슴을 부리는 주체로써 농장주나 권문세가 그리고 국가 권력 말고도 사찰이 대단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장예원에 불을 질러 그 흔적을 지워버리고선 면천된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물론 그런 사람도 없진 않았겠으나 나는 그리 된 사람도 대부분 도로 노비 머슴으로 제발로 들어갔다고 본다.
왜?
면천한 삶이 고되기만 했기 때문이었으므로.
면천한 평민들을 기다린 것은 군대와 노동력 징발, 그리고 세금이었다.
노비 머슴 땐 가지 않던 군대를 가야 했고 걸핏하면 농한기라 해서 겨울 초봄엔 강제노역에 혹사케 했으며 무엇보다 가뜩이나 없는 집안 살림은 각종 세금으로 거덜났다.
국가는 거두어만 가지 반대급부가 없다. 심지어 노동력 징발 군대 근무도 자비 조달이라 먹을것 입을것은 집에서 자체 조달해야 했다.
면천된 그들은 비로소 알았다.
머슴 노비가 낫다는 사실을.
첫째 군대 안 갔다. 둘째 성쌓기 준설 작업에 동원 안 됐다. 셋째 세금이 없었다.
그에 견주어 비인간적이긴 하지마는 민간에 투탁한 노비 머슴은 반대급부가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다들 자발로 도로 머슴 노비로 들어갔다.
그런 노비 머슴이라 해도, 민간에서의 그런 생활은 반대급부라도 있었으니,
무엇보다 국가는 일방으로 떼어가고 주는 것은 없었지만, 절반을 세경으로 떼어가도 나머지 절반이라도 내것으로 챙길 수는 있었다.
이는 고려시대 신라시대로 들어가면 더욱 극명해서, 군대 가야 하고, 세금에 시달리며, 걸핏하면 공사장에 동원되어 살 수 없다 아우성대던 사람들이 모조리 사찰로 들어갔다.
그 시대 사찰은 벗고 주린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마지막 비상 탈출구 어사일럼asylum이었다.
국가 지배권력 관점에서 고려사를 정리한 시각을 보면, 사찰의 비대화를 사시나무 떨듯 비판하는 장면을 목도하는데, 천만에!
그건 철저히 있는 놈들, 가진 놈들, 권력을 쥔 놈들 시각일 뿐, 주린 사람들 주체하는 관점은 아니다.
내가 갈 데가 없을 때, 희망을 상실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때, 그런 나를 구제하는 데가 사찰이었다.
면천?
그건 해방이 아니라 질곡의 시작이었다.
면천했다고 만세를 불러?
그건 역사왜곡이며 사이비 역사학이며, 유사역사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