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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Persia를 대체한 이란Iran이라는 말, 그것이 탑재한 제국주의성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3. 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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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왕조 전성기 시절 그 판도. 지금의 이란 땅을 포함하며, 그 중심지가 지금의 이란 땅이라는 사실만 있을 뿐, 이란과는 실상 직접 관련은 없다. 그것은 후대 근현대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선제 공격에 전쟁통에 휘말린 이란을 두고서 그간 궁금한 부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란이라는 정체성을 언제,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점이 그것이라 

이에 When and by whom was the national identity of Iran created?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AI가 다음과 같은 답변과 그 근거를 준다. 괄호 안이 참고문헌 근거다. 

 
Modern Iranian national identity was formally constructed and institutionalized by Reza Shah Pahlavi in 1935, who requested foreign nations to use "Iran" instead of "Persia" to emphasize a secular, Aryan-based statehood. However, this identity is rooted in ancient imperial history (Achaemenid/Sasanian) and was revived culturally during the 9th-11th centuries. 
ماهنامه جامعه شناسی سیاسی ایرا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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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phases in the creation of Iranian national identity:

Ancient Roots (550 BCE – 7th Century CE): The concept of Iranshahr (the Iranian realm) developed under the Sasanian Empire, establishing a, political, territorial, and cultural identity based on language and Zoroastrianism. 

Revival and Persistence (9th-16th Century): After the Arab conquest, Iranian identity was maintained through cultural, linguistic, and poetic traditions (e.g., Ferdowsi’s Shahnameh). 

Shi'ite Identity (Safavid Era, 1501-1736): The Safavids established a "Guarded Domains of Iran" blending cultural identity with Shi'a Islam. 

Modern Nationalist Construction (1925-1941): Reza Shah Pahlavi implemented top-down nationalism, focusing on pre-Islamic heritage, secularism, and modernization to create a modern nation-state. 

1935 Renaming: In 1935, Reza Shah officially requested foreign nations use "Iran" in correspondence, ending the exclusive use of the Western exonym "Persia" and reinforcing the native identity.

Islamic Republic (1979-Present): Following the 1979 Revolution, Ayatollah Khomeini and his followers modified the national identity to prioritize a Shi'a Islamic framework, which has been constantly renegotiated in the following decades.  
ماهنامه جامعه شناسی سیاسی ایرا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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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현재 카자르 왕조 시절 페르시아 지도. 이걸 보면 그 영역이 거의 지금의 이란과 겹침을 본다.

 
이란의 국가 정체성은 특정 시점에 한 개인에 의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 제국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었습니다.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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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형성 단계
이란의 정체성은 크게 세 시기를 거치며 구축되었습니다.

고대(기원전 6세기 ~ 서기 7세기):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이 세운 아케메네스 제국 시기에 "이란인"이라는 자각이 싹텄으며, 사산 왕조 시절 **'이란샤르(Iranshahr, 이란인들의 땅)'**라는 개념이 정치적·종교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중세 및 근세(16세기):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가 이란을 다시 통일하고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면서, 주변 수니파 국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이 완성되었습니다. 

근현대(20세기 초): 1905년 입헌 혁명을 거치며 현대적 의미의 민족주의가 등장했습니다. (Wikipedia / Wikipedia  +4)

2. 현대 이란 정체성의 확립자: 레자 샤 팔라비
서구에서 부르던 '페르시아' 대신 '이란'이라는 이름을 국제적으로 공식화하고 현대적인 국가 정체성을 체계화한 인물은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Pahlavi)**입니다.
(Wikipedia
Wikipedia  +1)

시기: 1935년
조치: 그는 외국 사절들에게 국가 명칭을 **'이란(Iran)'**으로 통일해 부를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아리안의 땅'이라는 고대 어원을 되찾아 이슬람 이전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고, 서구의 식민지적 시각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 도약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특징: 팔라비 왕조는 페르시아어 중심의 세속적 민족주의를 추진하며 현대 이란의 국가적 틀을 구축했습니다.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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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가 정권을 잡으며, 기존의 세속적 민족주의에 강력한 시아파 신정 체제의 정체성이 결합되어 오늘날의 이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apps.dtic.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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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기

 
이란이라는 정체성을 논할 적에 흔히 아케메네스 왕조를 논하기는 하지만, 과연 이 왕조가 뿌리인가는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훗날 이란 기반인 페르시아를 구성하는 핵심 분자로서, 지금의 이란이라는 땅을 포함하며, 나아가 그 중심지가 지금의 이란임은 분명하지만, 이 왕조는 제국 성향이라, 그 범위가 훨씬 넓었고, 언어라는 측면에서도 다종다기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란은 뭐라 해도 근현대의 산물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의 이란은 그 역사가 1935년이라, 그 연원을 보면 1세기도 되지 않는다. 

첫째 언어, 둘째 종교, 셋째 인종이 그것을 구성하는 삼두마차가 아닐까 하는데, 같은 무슬림이라 하지만, 그 주류라 할 사우디 중심 수니파와는 섞일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갈라졌고, 무슬림 문화권이 아랍어를 공용어로 기반으로 삼는데 견주어 페르시아어가 주축이다. 

종족이라는 측면에서 무수한 소수 민족이 존재하거니와 이들까지 포함하는 이란은 지금도 형성 중이라 봐야 한다. 

저 이란이라는 정체성 형성과 아케메네스 제국 사이 관계는 여러 모로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의 그것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으니 

로마 제국 형성 당시 지금의 이탈리아는 거의 별도로 취급되어 일종의 황제 직할령 비슷해서 훗날 이탈리아의 토대를 만드는 결정타가 된다. 

이런 핵심 구역, 소도 같은 별도 구역이 아케메네스 제국 아래 지금의 이란 땅이 존재했는가? 이 점이 나로서는 궁금하다. 
 
저 이란의 정체성 형성과 페르시아라는 말의 이란 대체와 관련해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점은,

말할 것도 없이 페르시아라는 말은 그것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영역과 그 지역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는 사실이니, 문제는 이것이 그네들 자신의 정체성은 아니며 타자가 구성한 관념이라는 점이다. 

이에 페르시아가 아닌 다른 무엇이 필요했으니, 그런 필요성에서 발명 혹은 재발견된 것이 이란이었다. 

분명 이란은 이란이라는 지역, 이란이라는 땅을 사는 사람들이 그네들을 스스로 규정한 개념어지만, 그렇다 해서 그것이 대체한 페르시아라는 환상을 방기 폐기하지 않았다. 

저 페르시아라는 개념은 그대로 이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포섭함으로써 애초 이란과는 관계가 없는 아케메네스 왕조 유산까지 다 이란으로 포섭해 버렸다. 

페르시아를 대체한 이란은 따라서 그 태생, 그리고 그 내셔널리즘적 발현 양상을 볼 적에 언제나 제국주의를 향해 치달릴 준비가 된 시한폭탄이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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