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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강역] 남한강에서 쫓겨난 고구려, 보복을 다짐한 온달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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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히 5-6세기 중반 무렵 삼국간 국경선과 충돌 지점이다.

물론 저 기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다툼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반으로 보아 갈등 국면은 매우 적다.

빨간 x가 백제 고구려가 쌈박질하는 구간이고 파란x가 신라 고구려가 충돌하는 전투라인이다.

신라 고구려는 남북 국경선에선 붙은 적이 없다. 태백산맥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적으로 충돌하는 구간 중 하나가 지금의 강릉 삼척 일대 신라 영토다.

나는 계속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한 적이 없다 하는데 이건 명백하다.

저 동해안 북쪽을 침략할 때 고구려는 언제나 말갈을 의지한다.

왜 말갈인가?

동해안 본래 주인이고 고구려 시대에도 고구려에 신속하기는 했으나 완전 복속도 아니며

무엇보다 저 동해안 땅이 본래는 말갈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말갈은 신라에 이를 갈았다.

야금야금 지들 땅 다 뺏어 저 시대엔 개마고원 북쪽으로 쫓겨난 상황이었다.

그러니 틈만 나면 고토 수복을 외치며 신라를 공격했던 것인데 문제는 혼자 힘으로 안 되니 언제나 고구려에 빌붙었다.




나는 앞서 5-6세기 무렵 삼국간 국경선은 얼추 앞 지도와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백산맥 서북쪽 땅, 곧 남한강 유역 내륙.

이곳에서 신라와 고구려는 박터지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신라가 이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었는데 소백산맥으로 국경을 정하고선 그 안쪽으로 들여앉는 정책을 버리고 이 산맥을 등지는 정책을 취했다는 데 있다.

삼년산성을 필두로 전방기지를 강화한 신라가 계속 고구려를 들이치기 시작한다.

야금야금 다 먹다가 마침내 진흥왕 시대가 되어 팔장군이 이끄는 대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하고서는 한반도 중부 내륙에 뿌리박은 고구려 씨를 말려버린다.

이 일이 얼마나 고구려로서는 치욕이었느냐 하면 이 잃어버린 고토를 수복하겠다며 내가 반드시 능욕당한 종묘사직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온달이다.

그는 부마였다. 부마가 선봉에 나선 보복전에서 온달이 맹서하는 말이 있다.

자못 비장하기만 한데 그가 고토수복을 다짐한 데는 놀랍게도 한강 하류는 씨알도 없고 오직 죽령 이북만을 외친다는 사실.

이 대목을 모두가 놓쳤다.

하지만 그런 호언장담과는 달리 온달은 무참히 패배하고 그 자신은 죽어서도 전장터를 떠나지 못하는 원혼이 되고 말았다.

이 원통함이 다시 고구려에선 살아나는데 느닷없이 사신으로 온 김춘추한테 분풀이를 하게 된다.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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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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