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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재 이문건이 증언하는 조선 전기 사대부가 아이들 태胎 처리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0. 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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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골호, 곧 뼈항아리 맞어? 내부 잔류물 분석해 봤어? 그럴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태항아리일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폼새 보니 제대로 세탁 안한 듯한데 지금이라도 내부 잔류물 박박 긁어서 성분 검사해야 한다.

 
아래 인용하는 대목은 가뜩이나 태실 태항아리 문제로 미쳐 날뛰는 날더러 참고하라 해서

국립제주박물관 강민경 선생이 찾아준 관련 아티클이어니와 
묵재일기로 유명한 그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 1567년)이라는 양반이 정리한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에 보이는 한 대목이라 하거니와,

이에는 당시 양반들이 어떻게 그네들 자녀의 태를 처리했는지를 증언하는 대목이 있다 하거니와,

이는 내가 직접 열람하지 못한 까닭에 이를 논급한 아티클을 인용하기로 한다. 

"계집종한테 손자의 태를 개울에서 깨끗이 씻게 하고, 이를 황색 사기 항아리에 담아 기름 종이로 덮고 끈으로 묶은 다음, 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묻어 두었다. 그리고 열이틀 후에 선석산 서쪽 골짜기  태봉 아래에 매장하였다."

이를 인용한 김득환 선생은 양아록 이 기록을 통해 장태 절차를 구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거니와

① 냇가에서 깨끗이 씻는다.
② 항아리에 담아 기름종이로 싼다.
③ 생기방生氣坊인 동쪽에 매달아 놓고 풀 위에 올려놓아 태운다.
④ 핏물에 채워 임시로 묻는다.
⑤ 생후 나흘째 되는 날, 북산北山에 묻도록 지시한다.

선생은 이를 통해 민간에서도 태를 항아리에 담아 태봉胎封이라 일컫는 산에다가 묻었음을 알 수 있다 했거니와 

유의할 점은 이런 태 매장 의식 전반은 실상 무덤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저 태를 처리하는 과정이 바로 시체로 치자면 염을 하는 과정이니, 그것만 아니라 실상 시체 장송하는 그것이랑 아주 판박이처럼 똑같다. 

본매장을 하기 전에 잠시 태를 생기방 동쪽을 향해 둔다 하거니와, 동쪽은 오행사상에 의하면 봄이요 싹이 트는 계절이라 생명이 준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에라는 데서 착안했으니, 이것 역시 시체를 본매장하기 전에 동쪽을 향해 머리를 두는 발상과 똑같다. 

더 유의할 점은 저건 그런 대로 있는 집안 이야기라 저 절차를 지켰지, 대부분은 지킬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라,

간단히 말해 저런 태실을 만드는 집안도 있는 집안 얘기였으니 이 역시 무덤이랑 똑같다. 

조선시대 무덤?

하도 많이 보이니 조선시대 사람이면 그 격식에 관계없이 다 무덤을 썼다 생각하지만 웃기는 소리!

무슨 주린 백성이 무덤을 쓴단 말인가? 부모 죽으면 그냥 거적대기에 싸서 산에다 갖다 버렸다. 

또 한 가지 부릅뜨고 봐야 할 대목은 가매장이라, 산으로 가져가서 본격 매장을 하기 전에 임시로 집안에다가 묻어두었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 부릅뜨고 봐야 한다. 집안 어디에다 묻겠는가?

담벼락 근처나 마루바닥 혹은 뒤안 같은 데 아니겠는가?

이문건이야 본매장까지 해서 그렇지 태실을 만드는 대부분은? 가매장으로 말아버렸다.

더 간단히 말해 저 경우는 산에다 묻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집안에다가 묻고 말았고, 그것이 본래하는 의미는 임시매장이었지만, 세상살이 어찌 계획대로 된다던가?

예컨대 집안에 가매장해 두었는데 그 집안이 불탈 수도 있고 전쟁이 일어나 도망갈 수도 있고 여타 변수는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저로 보아 저 이문건 시대만 해도 무덤 숫자가 많아야겠는가 태항아리 숫자가 많아야겠는가?

당연히 태항아리가 많다! 

무덤은 못 쓸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 망실되는 일이 그리 많으나 태실은? 

당연 빠따로 태항아리가 조선시대는 관짝보다 많아야 한다!

내가 맨날 묻는다.

그 많은 태항아리, 곧 관짝보다 많을 태실 어디다 팔아먹었냐고?

고작 태실이라 해 봐야 왕실의 그것이라 어찌 이걸로 장태藏胎 안태安胎 문화를 논한단 말인가?

뭐 일부 지자체가 조선시대 왕실 태실 문화 세계유산 등재 준비한다고 준동하기는 하더라만, 그래 세계유산 다 좋다.

다만 제대로 알기는 하고 준비는 해야할 것 아닌가?

고작 왕 혹은 왕자 타령 일삼으며, 몇 군데 태봉산 거덜먹이는 그 딴 짓으로 만족할 일인가 말이다. 

서울 사대문 안 그 무수한 항아리를 파고도 지진구地鎭具니 진단구鎭壇具니 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해대는 통에 태실문화? 

웃기는 소리다. 

그 무수한 태항아리를 파제끼고도 그것이 태항아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놈들이 무슨 태실 문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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