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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태실 구하기[Saving Kim Yushin's Placenta Jar]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4. 2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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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김유신 태실

 
충북 진천엔 김유신 태실이 있다.

그는 진천 태생이고 더구나 삼국사기에 그의 태실胎室이라 했으므로 이곳이 진짜 그의 태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데 관건은 이를 제외한 태실 조성 관련 기록이 조선시대 이전엔 전연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중국 기록을 봐도 당대 이전 문헌에서 태실 관련 기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김유신 태실은 평지돌출이다.

한데 내가 십수년전에 검토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塞 출토 백서錦書 중 태산서胎產書를 보니, 그에 태를 안치하는 방법을 기록한 대목이 있고,

더구나 그 대목에 붉은 펜으로 내가 차기劄記하기를, '김유신 태실'이라 한 메모가 있는 옛날 책을 발견했다.

이런 등신 멍충이.. (2017년 4월 21일)
 

마왕퇴 백서 중 태산서胎産書

 
이후 나는 계속 이 문제를 보강했으니, 무엇보다 태를 묻는 안태安胎 혹은 장태藏胎 전통이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연원이 깊고, 무엇보다 현재까지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그것은 장강長江, 특히 초楚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보강했거니와

더불어 편린에 지나지 아니하나, 또 후대 조선시대 증언이라는 단점이 있고,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같은 데서는 보이지 아니하나, 고려시대에도 저 장태 안태 전통이 있었다는 자료를 더욱 보강했거니와 

그 일환으로 개성 역사를 정리한 조선중기 때인가 지리지인가를 보니 고려 태조 왕건 태실을 증언하는 대목이 있어, 실상 신라 시대 마지막을 산 왕건이 태실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 이전 시대 통일신라시대에도 장태 안태 전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로 건물터 마룻바닥이나 담장에 붙어 나오는 항아리, 내용물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거니와, 그것들이 신라 혹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빈출하지만, 한국고고학에서는 밑도끝도 없이 지진구地鎭具 혹은 진단구鎭壇具라는 이름으로 퉁치는 기물이 실상은 (모든 것이 그렇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태항아리라는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사정이 일변하는 일이 있었으니, 백제 문화권에 속한 익산인가 하는 데서 명백히 태항아리일 수밖에 없는 항아리가 출현하고, 그 얼마 뒤인가 아마도 부여 능산리 일원인가(공주 송산리인가?)로 기억하는데 그에서도 명백히 저와 같은 태항아리가 출현함을 목도하는 기겁할 일을 경험했다. 

나는 이를 '김유신 태실 구하기[Saving Kim Yushin's Placenta Jar]'라 명명하거니와, 그만큼 우리한테 주어진 태실 태항아아리 증좌로써 김유신의 그것은 평지돌출이었던 까닭이다. 
 

익산 출토 7세기 혹은 그 이전 백제 태항아리

 
저와 같은 내 작업과 고고학적 조사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안태 장태 전통이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확실히 뿌리박고 있었거니와, 저 두 백제 문화권 고고학 자료와 김유신 태실로 볼 적에 그 하한선은 6세기(김유신 탄생은 595년이다)라는 사실을 만천하게 공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로서는 마왕퇴 백서馬王堆白書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남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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