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무령왕릉 추보》 (스핀오프) 모든 텍스트는 독자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이 말도 한참 하다가 이젠 그만 하면 됐겠지 하며 중단했으나, 다시금 시대는 바뀌고 독자 또한 달라진 대목도 없지 않을 테니 다시금 강조하지만 모든 텍스트는 독자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앞서 나는 무령왕릉 묘권墓券을 예화로 들면서 독자가 귀신이라는 이야기를 했거니와,
이 독자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아니하면 텍스트를 오독하게 되니, 그 대표가 실은 북한산 비봉비를 필두로 하는 소위 진흥왕 순수비였다.
이 진흥왕 순수비는 비봉과 마운령과 황초령까지 현재까지 세 기가 알려졌고, 감악산비는 글자가 한 글자도 없어 확인은 어려우나 여러 정황상 그렇다고 간주한다.
같은 진흥왕 시대 비로써 입지조건도 비슷하지만, 저와 결이 다른 것이 이른바 창녕 척경비라, 실제 비문 내용을 봐도 저 순수비와는 성격이 전연 다르다.
이것이 왜 다른가는 바로 독자 때문이다.
창녕 척경비는 그 위치로 봐도 그렇고 그 내용을 봐도, 이 텍스트는 당시 신라 신민을 향한 포효라, 더욱 구체로는 창녕 지방 일대 신민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저 험준한 산상에다 세운 비석은 독자가 신민이 아니다. 왜? 이걸 읽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미쳤다고? 왜? 저런 험준한 곳에 굳이 올라가서 와 우리 대왕님께서 이리 말씀하셨네? 새겨야지? 하겠는가?
이런 물음에서 바로 진흥왕 순수비가 무엇인지 그것을 캐어내게 되는 것이며, 바로 이에서 우리는 바로 진 시황제와 한 무제로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다.
저 순수비는 독자가 천신지기天神地祇라, 간단히 신기神祇라, 바로 이들을 향한 텍스트였다.
저 순수비는 다시금 강조하지만 김태식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독자를 묻지 않았고, 김태식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산상山上 제전祭典의 기념물이라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또 김태식 이전 어느 누구도 저 순수비를 시황제, 그리고 한 무제 유철이랑 비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자가 누구인가는 그만큼 그 텍스트를 이해할 때 중요하다.
조선시대 일기?
이는 독자 개념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첫째 후세를 위한 것, 둘째 본인의 메모리를 위한 것이어니와, 전자는 필연적으로 가탁 분식 왜곡이 일어나며, 후자는 상대적으로 그에서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썩 전자와 결이 다르다고는 볼 수 없다.
흔히 후자를 중시하나, 천만에! 저 가탁 분식 왜곡이야말로 내가 분석 대상으로 삼는 붕파 대상이라, 나한테는 그 비밀을 헤쳐가는 짜릿함을 준다.
《직설 무령왕릉 추보》 (3) 독자는 귀신이다
《직설 무령왕릉 추보》 (3) 독자는 귀신이다
모든 텍스트는 독자가 있다. 이 독자 문제는 그 텍스트가 어찌해서 작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가늠자다. 하지만 독자가 누구인지는 거의 모든 텍스트가 숨기는 일이 많으니, 그런 까닭에 장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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