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찬론沙飡論] 두 분대로 나누어 고구려를 뚫은 특공대장 열기와 구근

서기 661~662년 당이 주도하고 신라가 측면 지원한 고구려 정벌전은 결과로는 실패했다.
이 실패한 작전이 훗날 대략 6~7년이 흘러 마침내 668년 고구려 완전 정벌로 끝난다.
백제를 멸한 직후 이어진 이 전쟁에 신라는 대각간 김유신이 총사령관으로 국경을 넘어 고구려로 들어가 당군한테 군량을 대는 일을 했다.
군량 수송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해로가 아닌 육로를 선택했다는 점이 이채롭거니와, 왜 이채라 하는가?
한반도 지형을 보면 도대체가 육로 군량 수송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아무리 역전하는 용사라 하더라도 마침 겨울인 데다, 곳곳에서 매복한 고구려군까지 출몰하니 이 일은 더한 고역을 신라에 주었으니, 하도 그 수송 작전이 힘드니 오죽하면 이미 당시 70을 바라보던 상노인 김유신이 엄동설한에 웃통을 벗어제끼고 군사들을 독려했다지 않은가?
곤경에 처한 신라 군량 수송군은 신라군 상황, 곧 군량이 언제쯤 도달할 수 있는지를 평양성 정벌에 나선 당군에 알려야했으니, 이때 문제가 그렇다면 이 전령 특공대를 누가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이 대목 삼국사기 열기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일렀다.
이때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에게 명하여 쌀 4,000섬과 조[租] 22,250섬을 운반하게 했다. 장새獐塞[변경을 말함-인용자]에 이르렀는데, 눈바람이 불고 몹시 추워 사람과 말이 많이 얼어 죽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신라〕 군사들이 지친 것을 알고 도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치려고 했다. 당나라 군영과는 3만여 보步 떨어져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편지를 보내고자 하였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일을 자원하고 나선 이가 있었다. 이어지는 열기 열전 한 대목.
그때 열기는 보기감步騎監으로 [김유신을] 보좌하였는데,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제가 비록 우둔하고 느리지만, 가는 사람 수를 채우고 싶습니다”라고 아뢰니 마침내 군사軍師 구근仇近 등 15인과 함께 활과 칼을 가지고 말을 달리니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만 보고 막지는 못했다.
열기가 맡은 보기감은 보나마나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보병과 기병을 지휘하는 현장 부대장이며, 군사는 사령부에서 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 장교였음을 알겠다.
15명이라 하고, 나아가 이 특공대를 이끈 두 사람으로 보기감 열기와 군사 구근을 나란히 거론한 것으로 보아 이 특공대는 2개 분대로 이뤄졌음을 미루어 안다.
한 분대가 전멸할 경우, 다른 분대가 남아 임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음을 본다.
나아가 이 파견은 분명 열기가 자원했지만, 김유신은 못내 그를 믿지 못한 구석이 있었음을 짐작한다.
모르긴 해도 김유신은 열기를 잘 몰랐을 것이다. 총사령관 별 네 개가 어찌 중위나 대위를 알겠는가?
이는 구근과는 상당히 다른 대목이다.
구근은 지근거리에서 항시 김유신을 호위했기에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믿지 못했으니, 믿을 만한 자기 핵심 참모를 딸려 보낸 것이다.
어떻든 이들은 임무를 완수했다.
다시 이 대목 열기 열전 기술.
대략 이틀을 달려 소蘇 장군[소정방]에게 신라군 명령을 전달하니, 당나라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서 기뻐하고 위로하며 답서를 보냈다. 열기가 또 이틀이 걸려 되돌아왔다. 유신이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열기와 구근한테 나란히 ] 급찬級湌 관등을 주었다.
이틀이 걸려 달려 평양성으로 갔다가, 다시 이틀이 걸려 신라군 본영으로 특공대는 귀환했다.
3만보 떨어진 지점을 왕복했으니 이들은 불과 나흘 만에 6만보를 횡단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달린 셈이다. 말이 버텨냈을지 모를 일이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 신라가 실어나른 군량이 쌀 4,000섬과 조[租] 22,250섬이라 했거니와. 이 경우 조[租]란 도대체 어떤 곡물일까?
도대체가 쌀과 대비하는 저 組가 무엇인지 풀이한 대목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자전 중 하나인 육서고六書故에 이르기를 특정한 작물로써 조[租]를 설명하기를 田中禾稭也라 설명하거니와, 그렇다면 禾稭란 무엇일까?
바이두 항목에 물으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뜬다.
• 本義:指穀物(如稻、麥等)脫粒後剩下的莖稈,即「秸稈」或「稻草」。
• 古義:根據《說文解字》,「稭」指去皮後的禾稿,古代祭天時曾用來鋪作席子(「禾稾去其皮,祭天以為席」)。
• 引申/比喻:在宗教或聖經文學中(如「草木禾稭」),常用來比喻軟弱、經不起考驗、屬世或不持久的工程與生命建造
• 원래 의미: 쌀이나 밀과 같은 곡식을 타작하고 남은 줄기, 즉 "짚"이나 "쌀짚"을 가리킵니다.
• 고대 의미: 『설문해자』(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짚"은 곡식의 껍질을 벗긴 짚을 의미하며, 고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돗자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곡식의 껍질을 벗겨 제사에 돗자리로 사용한다.")
• 확장된/은유적 의미: 종교 문헌이나 성경 문헌(예: "풀, 나무, 짚")에서는 약하고, 깨지기 쉽고, 세속적이거나 수명이 짧은 삶의 여정이나 인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간단히 말해 짚이다! 곧, 전쟁 물자로 동원한 말과 소와 같은 가축을 먹일 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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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방영 예정이라는 KBS 대하드라마 문무가 어찌 나올지 모르겠다. 기벌포 전투가 나온다 하고, 그 영웅이 사찬 시득이라 사찬이 무엇인지 살피는 자리를 갖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