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교사가 궁예 출가 세달사? 고려 고승 충희 비 흔적 발견

삼국사기 열전은 모두 열 권이라, 초반 세 권은 몽창 김유신 한 명한테 배열한데 견주어 그 마지막이자, 삼국유사 전체 대미는 반역 열전으로 마감했으니 이 반역 열전 두 주인공은 후백제 견훤과 태봉 궁예다.
두 사람은 고려 왕조로서야 반역자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이 있었기에 고려 왕조 개창이 가능했기에 건국 열전이기도 한 셈이다.
곧 고려 왕조는 저 두 반역자한테서 직접 뿌리를 둔다.
저 중에서도 궁예弓裔 열전 초반기는 그의 출생부터 성장을 다루거니와, 개중 어린 시절 한 대목으로 다음이 있다.
나이가 10여 세가 되었는데도 장난[遊戱]을 그치지 않으니 그 여자 종이 깨우쳐 말하기를, “그대는 태어나면서 나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데 제가 차마〔그냥 두지〕못하여 몰래 길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광포함[狂]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남들한테 〔그 정체가〕까발려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와 그대는 모두〔죽음을〕면할 수 없을 것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궁예가 울면서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제가 떠나면 어머니[이 여종을 어머니로 삼았는지] 걱정거리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고는 곧 세달사世達寺에 들어가니 지금〔고려〕의 흥교사興敎寺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는데, 스스로 선종善宗이라는 법호를 지었다.
궁예가 출가한 세달사世達寺가 삼국유사에도 등장하거니와, 곧 그 권 제3 탑상 제4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편제 아래 이야기에서는 세규사世逵寺라는 이름이 등장하거니와, 이를 주기하기를 흥교사라 했으니, ‘규逵’와 ‘달達’은 글자 모양이 매우 엇비슷한 데서 빚어진 착란일 것이라, 삼국사기에 보이는 세달사가 옳다고 본다.
이 세달사는 고려 왕조 개창까지 한반도 역사를 운문으로 읊은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도 엿보이거니와, 그 권卷 하下 후고려기에서는 궁예가 흥교사에서 출가했다 하면서, 이 사찰을 궁예 당시에는 선달사善達寺라 불렀다 했거니와 발음으로 보나 표기로 보나 이 선달사가 세달사를 말할 것이다.
대동야승은 필원잡기에 보이는 대목이라 하면서 아래 대목을 절취하거니와
《자치통감資治通鑑》 〈후량기後梁紀〉에 이르기를, “고려 석굴사石窟寺의 애꾸 중 궁예躬乂가 사람들을 모아 개주開州에 웅거하고는 왕이라 자칭하고, 태봉국太封國으로 칭호하였으며, 좌량위佐良尉 김입기金立奇를 보내어 오吳에 들어와 조공했다”고 했다. 궁예躬乂는 즉 궁예弓裔인데, 개주는 곧 개성부開城府이고, 태봉太封은 곧 태봉泰封이라, 지금의 철원鐵原이다. 석굴사는 바로 세달사世達寺인데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를 보면 저 세달사가 영월인지 어딘지 도대체 감을 잡을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훗날 강원도 영월에 흥교사, 곧 세달사가 있었다는 근거는 아래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제46 강원도江原道
영월군寧越郡 관련 기술 중 불교 사찰 이야기를 다룬 불우佛宇에 보이는 다음 기술에 비롯한다.
흥교사興敎寺: 대화산大華山 서쪽에 있다. 고려의 중 충희沖曦의 비碑가 있다. 충희는 인종仁宗의 아들이다. 비의 글자가 벗겨지고 떨어졌기 때문에 한 구절도 읽을 수가 없다. 오직 비음碑陰에 스님의 문인門人을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비음에는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최선崔詵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글을 쓴다. 그 글에 옛날 태사공太史公이 이미 공자孔子를 위하여 세가世家를 짓고 또 70제자 사적을 기술하여 열전列傳에 편찬한 뒤에 이름난 산에 감춰두었으며, 당唐 나라 유자후柳子厚[유종원을 말함-인용자]는 자기 아버지를 위한 신도비 표문表文을 짓고 또 선인先人의 벗 66명을 기록하여 비석의 뒷면에 새겼으니, 비음에 기記를 쓰는 것은 지금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국사國師의 문인 221명 이름을 모두 왼편에 쓴다”고 했다.
한데 심상치 않은 점이 이 흥교사 기술에서도 궁예 관련 운운이 전연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적이 누락된다? 있기 힘든 일이다.

흥교사, 곧 궁예가 출가한 세달사는 혹 다른 곳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달사를 적기하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고려 당시 흥교사라 적기 했으니, 흥교사가 고려 당시에는 꽤 유명한 사찰이었음을 엿보게 되거니와, 무엇보다 인종의 왕자 충희와 연관된다는 점은 예사로이 보아 넘길 수는 없다 하겠다. 곧 이 영월 흥교사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세달사 후보지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런 가운데서 영월군에서는 우야둥둥 지금은 터만 남은 이 흥교사를 궁예와 연관하며 각종 발굴 조사 정비 작업을 벌이는 중이라, 근자만 해도 어느 기관에 의뢰한 발굴조사를 벌인 모양이라(보도자료에는 의뢰 기관이 안 보인다), 그 성과라 해서 보도자료로 배포했으니 축약하면
그 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고려 왕실 승려 충희 비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시설을 포함한 새로운 흔적을 발견했다 하거니와
배포한 사진을 보면 전형하는 석비 기반 시설이라, 더불어 고려시대 기와들도 추려 공개했다.
궁예 출가 영월 세달사지서 석조시설 발견…역사적 가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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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출가 영월 세달사지서 석조시설 발견…역사적 가치 재조명 | 연합뉴스
(영월=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출가한 사찰로 알려진 강원 영월 세달사지에서 고려시대 승려 충희의 비와 관련됐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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