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걸로 큰 것을 드신 양반들, 용꼬리보단 뱀대가리를!

그래 흔히 하는 말로 용꼬리보단 뱀대가리가 되라 하거니와 그 맥락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니 그런 점에서 한국문화재학이 딱 저에 해당한다.
이건 나한테도 해당하는 말이라 내가 왜 굳이 기자로서 삶으로 문화재를 선택했냐 하면 딱 저것이라 용꼬리는 죽어도 싫었고 뱀대가리쯤 되는 것으로 그나마 적성에 맞다 해서 고른 데가 문화재였다. 왜? 문화재를 하겠다고 섣불리 나서는 기자가 거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솔까 내가 기자 한 번 해 보겠다고 하는 마당에 그 이유 혹은 동기는 수백 가지일 것이로대 그나마 내가 대장질할 만한 분야로 문화재 만한 것이 없기는 했더랬다.
다만 이 문화재 기자도 맹주를 자처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고 또 그런 가뭄에 난 콩과 같은 문화재 기자가 다들 이른바 덕후 계열이라 젊은 시절엔 이 좁아터진 시장에서 그네와 박터지는 경쟁을 일삼기도 했으니 우야둥둥 선택은 비교적 잘한 편이라 이걸로 삼십년을 먹고 살았다.
문화재..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래 이 한 줌 되지도 아니하는 꼬바리에서 그런 대로 등수 아래 드니, 그걸로 참말로 잘먹고 잘살았다.
이리 말하니 이걸로 내가 떼부자나 된 듯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입에 풀칠하고 처자식 먹여살렸다는 정도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물론 이 쥐꼬리로 지금 이 순간에도 뽀찌 뜯어쳐먹고 사는 놈도 적지 않다.
그딴 뽀찌 떼쳐먹고 욕 쳐먹느니 그딴 뽀찌 안 쳐먹는 게 백배 낫더라.
하긴 그래도 혹 젊은 시절 저 쥐꼬리로 소위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돈도 크게 벌었음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후회도 없지는 않다 으하하.
각설하고 저 안휘준 선생 세대는 식민지 말기에 태어나 해방 이후 이땅에서 자양한 연구자 일세대라 나는 당신이 그 척박한 해방 이후 풍토에서 애초부터 난 한국미술사를 하겠노라 선언했을까 몹시도 의심한다.
훗날 쓴 글들을 보면 아주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는 한국미술사를 하기로 예정된 듯한 투철한 사명의식을 표출하는데 글쎄다, 이건 결과론 아닐까 싶다.
난 선생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보는데 이건 당신이 원했건 아니했건 용꼬리보다 뱀대가리를 선택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가 그 세대 다른 동창들처럼 법조 의료 경제인으로 갔다면 지금 누리는 위광을 얻었을까?
고만고만한 용꼬리가 되고 말았을 공산이 더 크다고 본다.
그만큼 저 시대 한국미술사는 드물었기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굳이 골랐기에 그에서 비롯하는 훗날 혜택을 고스란히 세례했으리라.
결론은 뭐냐?
뱀대가리 되어 그 쥐꼬리로 한국도 먹고 세계도 주름잡았음 싶다고 감히 젊은이들한테 추천한다.
각중에 왜 뱀탕이 땡기지?
***
지금 학단에서 미술사는 저 시대 안휘준 선생이 결코 탄생할 수 없다.
왜?
너무 많은 후학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이제 맹주의 시대는 갔다.
설혹 저 미술사로 뭔가 뱀대가리가 되고 싶거덜랑 다른 미술사학도가 결코 쳐다도 안 보는 초미극 미시사를 개척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나 같음 아예 미술사는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