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송학동 14호분 팠더니 가야권 최대 무덤이고, 만든 방식 드러났다고?

지금의 경남 고성을 기반으로 삼는 가야계 고대 왕국 소가야, 그네들이 최고 지배층 공동묘지임이 분명한 소위 고성 송학동 고분군이 있거니와, 근자에는 다른 지역 가야 무덤들과 더불어 세계유산 자리까지 꿰차게 되었거니와
그 속내가 궁금하다 해서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도 파서 그 안을 들여다 보기로 한 바, 그 일환으로 번호표 붙인 무덤들 중에서도 14호분이라 명명한 제법 규모를 자랑하는 무덤을 팠거니와 그 조사 성과를 경남도가 어제 공개했다 하니
그네들 발표에 의하건대 이번 '고성 송학동 14호분 2차 발굴조사' 결과, 이 무덤은 5세기 중반 무렵 조성된 소가야 왕묘로 추정한다 하니, 구체로 보면 서기 450년 무렵, 거금 대략 1천600년 전에 만든 무덤이 되겠다.

그렇다면 왜 팠는가?
경남도나 고성군이 직접 이걸 팔 여력은 없으므로, 이를 발굴조사할 만한 전문기관을 물색하게 되는데, 조사단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재)삼강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가 지정되었다 이거겠다.
이 삼강은 아주 오래 전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며 각종 발굴조사를 주도한 최종규라는 분이 기관 운영을 맡은 기관으로, 이 기관이 이번 2차 조사를 하고선 경남도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르기를
"봉분 축조공정 전모 확인"
했다 하면서 그것을 상술하기를,
"가야 고분 축조기술의 표준형 제시"라 하면서, 이번 조사를 통해 "사적 확대·복원정비 추진"한다 하거니와,
계속 말하지만 고작 무덤 하나 파서 그것을 어찌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이를 통해 복원정비를 한다는 말을 한국고고학에서 남발하지만
첫째, 정비를 제대로 할 것 같으면 발굴할 필요가 없고, 둘째 파는 이유가 어찌 또, 또, 또 무덤 만드는 방식을 확인하는 데 있단 말인가?
이제 그거 파 봤자 저런 데서 새로 나올 말은 암것도 없다.
그리 좋아하는 축조 방식, 그거 해명해서 얻을 바 하나도 없다. 다른 고급진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암튼 저네들 이르기를 고성읍 기월리 일원에서 진행 중인 고성 송학동 고분군 14호분 2차 발굴조사 결과, 이 무덤이 가야권역 내 최대 규모 봉분 구조와 정교한 축조공정을 동원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하거니와
국가유산청과 경상남도가 지원하는 국가지정문화유산 보수정비사업 일환으로 진행한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1일 시작해 오는 11월 10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라 한다.
조사에서 밝혀낸 최대 사실은 무덤 규모라 한다.
그래 얼마 만하기에?
봉분 기준이겠거니와 암튼 남북 47.5m, 동서 53m, 높이 7.6m에 달하는 초대형 원형 봉토분으로 확인했으며, 이 정도면 가야권역 내 최대 규모 고분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고 한다.
그래 송학동 고분 현장 가보면 단박에 알겠지만 경주 중형급 무덤 정도는 된다.
더 들여다 보면 봉분 바깥면에 즙석葺石 처리를 했다는데, 한국고고학에서는 이런 식 무덤을 즙석봉토분 운운하거니와, 즙葺이란 깔개처럼 커버처럼 이부자리처럼 깐다는 뜻이다. 암것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 돌을 깔았다는 뜻이다.
나아가 토제土堤·상하부 성토 구조는 소가야 왕묘의 체계적인 축조방식을 보여주며, 가야권 고분 축조기술의 표준모델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뭐 복잡히 생각할 필요 하나도 없다.
저수지 둑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저 무덤 규모가 크니 저런 토목 방식 사용하지 않았다면 외려 그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자 이건 껍데기 이야기고 그렇다면 시체 묻은 데는 어떤가?
이르기를 "14호분의 매장주체부는 수혈식 석곽묘(길이 5.25m, 너비 0.95m, 깊이 1.2m)로, 내부에서 대도大刀, 갑주甲冑, 살포, 철모鐵矛 등 무기류와 함께 소가야계 토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하거니와
수혈식 석곽? 이 또한 암것도 아니라 수혈竪穴이란 직각으로 파고 들어간 무덤광이라는 뜻이고, 그렇게 무덤을 수직으로 파고 내려가서 그 안에다가 돌방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럼 무덤방을 위에서 파고 내려가지 공중으로 날아올리겠는가?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틀림없이 무덤 출토 껴묻거리에 기반할 텐데 같은 송학동 고분군 중에서도 이미 조사한 1호분보다는 앞서 만든 것으로 본댄다.
이번 14호 무덤에서는 앞선 1차 조사에서 대금계판갑帶金系板甲과 충각부투구衝角附冑 같은 유물을 확인했다 하거니와,
그래 하도 조사단장 최종규 선생이 일본고고학에 혹닉한 사람이라 저런 표현을 애용한다 넘어가 주자.
암튼 저런 대판계 혹은 충각부 운운 유물은 소가야 지역 최초 사례라 하거니와, 소가야 최상부에서는 저와 같은 고급 수입품을 좋아했댄다.
참 이상하지? 역사를 통괄하면 동서고금 막론하고 있는 놈들은 외제를 그리 좋아하니 말이다.
암튼 "이번 2차 발굴을 통해 봉분 축조공정과 원통형 토기 설치, 층위구조 등이 명확히 규명되면서, 가야 연명체의 정치·기술 발전단계를 실증적으로 밝힐 수 있는 기초자료가 확보되었다"고 하면서,
"가야권 고분 가운데 토제(土堤)·즙석(葺石)·상하부 성토공정이 완비된 유일한 사례로 평가되어, 가야사 복원과 세계유산 연구에서도 중요한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고 한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기왕 이른바 학술발굴을 하려거든, 제대로 조사 분석장비 갖추고 들어가서 분석할 만한 모든 것은 현재로서는 싸그리 분석해서 좀 더 고급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규모가 크다? 축조 방식이 놀랍다? 외제차 많이 나왔다?
이건 하인리히 슐리만 시대 고고학이지 어째 21세기 고고학이리오?
21세기 발굴품은 무덤 규모나 금부치나 무기류가 아니라, DNA며 단백질이며 동위원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