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馬具 환장주의자들한테 고한다, 말 한 마리 키워봐라!

한국고고학에서 마구馬具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해서 토기 다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특히 등자니 해서 이쪽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거니와,
내가 마구를 연구한다 해서 그런 내가 결코 馬문화 전공자라 할 수는 없거니와, 도대체가 말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통인지를 알지 못하는 탁상의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말을 키운 적 없다. 다만, 그와 엇비슷한 소와 함께 살았으니, 이 소 키우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멍에만 갖고 누가 떠든다면 그런 놈이 무슨 학문을 한다 하겠는가?
이 소 한 마리 키우는 일은 고통으로 점철한다.
물론 우골탑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그런 고통에는 그것을 짊어질 만한 대가가 따르기는 하지만 소라도 한 번 키워보고서, 혹은 그 고통 위에서 우구牛具를 논해야지, 거두절미하고 말 키우는 그 고통은 전연 알지도 못하거나, 알려 하지도 않으면서 등자를 논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소를 키우며 그것을 둘러싼 제반하는 문화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혹은 배경도 없는 멍에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말을 어떻게 키우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희생은 무엇인지 대한 고려 없는 등자론 마구론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말은 자연히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말은 그냥 키우면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세 끼를 먹듯이 말 또한 소 또한 기본에서 세 끼를 먹어야 하며, 사람이 병을 앓듯이 소나 말 또한 독감이 걸리고 전염병에도 걸린다.
소나 말이 방목이 전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에서 필요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간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며, 이 보살핌이 인간한테는 막대한 고통을 수반한다.

소 한 마리 키워봐라! 매양 이야기하지만 그 막대하게 먹어대는 꼴은 물론이려니와 그에 어울리는 막대한 양을 끊임없이 싸대는데, 그런 동물을 보호하는 공간을 마굿간이라 하거니와,
그 마굿간 하나도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거니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비루병이 걸핏하면 걸리거니와, 무엇보다 그에서 유래하는 파리 모기 떼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다시금 이야기하면 우리가 마구를 볼 때, 그에서 읽어야 할 것은 양식 변화가 아니라 그것이 동반했을 무수한 고통과 희생이다.
이 고통과 희생을 읽을 때 마구 이야기는 달라지며, 그에서 비로소 고고학은 휴머니즘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