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진묘수 닮은 사천성의 돌 무소, 그건 홍수와의 쟁투 산물이었다


길이 3.1미터, 두께 1.38미터, 높이 1.93미터, 성도박물관成都博物館 소장.
나이 2,000여 세, 몸무게 8.5톤.
성도成都 출신 이 헤비급 스타는 정체가 뭘까?
석서石犀...돌로 만든 무소

저 육중함에 어울리게 저런 식으로 성도박물관을 진좌鎭座한다.
체적이 크고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아 박물관에서는 “진관지보镇馆之宝”, 곧 박물관을 지키는 보물로 선전한다.
저 모양도 그렇고, 저런 모습에서 우리는 무령왕릉 진묘수鎭墓獸를 연상한다.
이 무소는 짧고 굵은 팔다리와 둥근 몸통 비율이 특징이다. 큰 머리가 몸 3분의 1을 차지한다.

둘째, 표정이 독특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다. 왼쪽 뒷부분에는 부활절 계랸Easter egg 비슷한 문양이 있다.
붉은 사암 한 덩이를 조각했다. 조각 양식은 소박하다.
사천에서 발견된 이 시기 원형 조각 중 가장 완벽하며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견된 동시대 조각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 무소는 수자원 관리 사업 "핵심 중추"였다.
전국시대 이래 무소는 두 가지 역할을 했다.
수위계(고대 수위 측정 장치)이자 물을 조절하는 신화 속 동물이었다.
고대인들은 무소가 "물을 가르는" 능력을 있다고 믿었고, 특히 고대 촉蜀 문화권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고대 촉 사람들은 강둑이나 수로와 같은 주요 장소에 돌로 만든 동물을 배치해 홍수를 막고 재난을 막고자 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돌 무소 상사上司는 전국시대 뛰어난 수리 전문가 이빙李冰이었다고 한다.
촉나라 역사 기록인 화양국지華陽國志와 촉왕본기蜀王本紀에 따르면, 이빙은 촉나라 태수로 재임하는 동안 물귀신을 쫓기 위해 돌 무소 다섯 마리를 만들었다.
개중 무소 두 마리는 태수 관저에 두고 한 마리는 장다리 아래에, 두 마리는 물속에 두어 물귀신을 쫓고자 했는데 그래서 "무소마을犀牛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촉왕본기
더욱이, 발굴된 석조 무소 실제 위치를 고려할 때, 진한秦漢시대 촉군蜀郡 관아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 석상이 이빙 거처에 놓인 돌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이 석조 무소는 성도 평원의 물 관리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물리적 증거이기도 하다.

거의 40년 동안 묻혀 있던 이 돌 조각 부활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73년, 성도 광장 근처에서 이 돌 무소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발굴 기술이 부족했고 보존 조건이 열악하여 다시 메웠다.
2012년 12월이 되어서야 돌 무소는 다시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었던 탓에 여러 문제에 시달렸다.
토양과 물 속 염분 때문에 심하게 침식되었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이 소를 위해 "성형 수술 계획"을 세웠다.

염분을 빼내기 위해 "페이스 마스크"를 씌운 기간이 2년이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이 돌 무소는 원래의 붉은 사암색을 점차 회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