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울고 갈 "소장군 도족이"

오늘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지난 2년간 부여 관북리 유적을 파제껴 수습한 백제 목간 중 일부라 해서 공개한 것 중에서도
이른바 편철編綴 목간이라 해서 그 실물 사진과 판독 중 일부를 공개한 한 장면이라
저 목간은 한국 목간계에서는 이제는 흔해 빠진 물품 꼬리표랑은 조금 달라서 딱 봐도 무슨 행정 문서 같은 느낌을 주니
생김새를 보면 딱 공자님이 수백 번을 읽어 넝마가 되었다는 딱 그 책, 죽책竹冊 그것임을 본다.
저런 생김새 문서는 실은 조선시대까지도 흔한데, 지금도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보는 임명 교서[교지敎旨] 같은 그런 책 종류다.
그래 다 좋다.
저 중에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라는 문구가 확인된 모양이라 이 부문을 확대하면 사진은 이렇다.

묵적墨跡을 살피니 판독에는 그다지 나도 이견이 없다. 따를 만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해석!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를 연구소는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뜻의 인사 관련 문서라보 본댄다.
저거 틀림없이 저런 문자자료 나올 때마다 불러제끼는 목간학회 연구자들을 불러 저리 해석한 모양인데
기가 차고 똥이 찬다.
그 앞 부분은 다 날아가서 자신은 없지만 상식으로 어찌 저리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저 문구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슨 功四라는 사람을 소장군 도족이小將軍刀足二에 임명한다가 되어야 한다.
앞뒤로 다 짤렸으니 저 문구는
어떠어떠한 사람이 공적이 있어(그 공적이 4등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소장군으로 임명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문맥으로 보면 功四는 인명 일부여야 한다.
刀足二 이하는 도대체 어찌 연결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현재로서는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
멀쩡한 자료도 저 학회만 들어갔다 나오면 아주 등신이 되어서 나오는데,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
간독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 고대 법령사를 공부한 임병덕 충북대 명예교수가 다음과 같은 간평을 덧붙여 소개한다.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를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뜻의 인사 관련 문서라고 하는데, 제가 백제 목간에 관한 지식이 없고, 아마도 이에 관한 사례도 없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제가 다른 해석을 제시하기 어려운데, 그 중 “功四”를 ‘공적이 4개'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적 1명을 체포하는 것도 공적 1개, 적 20명을 살해하는 것도 공적1개 이런 식으로 운영되었을 리가 없지요'
장가산 336한묘·功令, 12∼13간
“吏自佐史以上, 各以定視事日自占勞, 勞盈歲爲中勞, 中勞四歲爲一功. 從軍勞二歲亦爲一功. 壬 身斬首二級、若捕虜二人各爲一功. 軍論之爵二級爲半功.”
: 吏 만1년 視事 1中勞 → 中勞 4歲 1功, 從軍 2歲 1功, 斬首2級·捕虜2人 1功, 軍爵 2級 半功
다만, 백제에도 이런 공령 규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장가산한간 공령식으로 이해하면, 일공, 반공 등의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0.5점짜리도 있고, 1점도 있는데, 이런 것을 합쳐서 4점, 즉 "공적이 4점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4공이면 일반 리는 로16, 16년 근무치고, 무관이면 8년 종군, 여기에 참수 포로의 공이 있으면 좀더 단축되겠죠.
혹 제 생각처럼 백제의 율령에 공령 규정이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면, 참 의미있는 목간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