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예덕리 공동묘지, 1,600년 전 지역 오야붕 공동체가 만든 공동묘지


국가유산청이 근자 전라남도 함평 예덕리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거니와
그를 공지하면서 그네가 한 말마따나 이 무덤은 서기 3세기 후반 이래 5세기 전반에 걸쳐 대략 150년간 만들어간 삼국시대 대표적 무덤 유산 중 하나로서
이를 그네들은 '마한고분'이라 규정하면서 이를 만든 주체를 마한이라 했지만, 이는 망발 중에서도 상망발이라, 이미 망하고 없는 마한이 무슨 무덤을 만든단 말인가?
견주건대 죽은지 오백년인 이율곡이 다시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교육헌장을 썼다는 말과 같다.

암튼 저 무덤은 1994년 시작한 발굴조사를 통해 총 14기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인 소위 제형분梯形墳, 곧 사다리꼴 모양 봉분을 갖춤한 것으로 드러났거니와, 당시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저와 같은 건축 유산과 출토유물을 출토했다.
영산강 지류 중 하나인 고막원천 상류에는 저를 포함해 이 지역 저 시대 특징이라 할 만한 저런 무덤이 제법 있다.
저 무덤은 일명 ‘만가촌 고분군’이라고도 하거니와 개별 무덤(이를 저짝 고고학에서는 분구墳丘라는 말로 부르지만 이 역시 개소리 중에 상개소리라, 분구라는 말은 무덤 봉분이라는 뜻일 뿐이다) 옆에다 새 무덤을 만들어나가는 소위 ‘수평’ 확장과 기존 무덤 위에 새 무덤을 만드는 ‘수직’ 확장 방식이 함께 나타나는 영산강 유역 대형 무덤 특징이 가장 잘 확인되는 곳이라고 국가유산청은 평가한다.

나아가 하나의 커다란 봉분 안에다가 마치 아파트나 연립주택처럼 여러 시체를 각기 다른 시설로 만들어 매장하는 소위 다장多葬 장법을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뭐 한국고고학이 매양 하는 말이라고는 이딴 거지 같은 겉모양 타령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무덤이 모인 이곳에서는 아울러 동시기일 가능성이 클 듯한데 암튼 집터 7곳, 도기 가마 2곳, 경작지 두 군데랑 함께 마을 경계 역할과 배수로 기능을 아울렀다고 보는 도랑 모양 소위 구상유구溝狀遺構[꼭 이런 거지 같은 말을 쓰야는지 모르겠지만] 4곳과 같은 소위 생활 흔적이 아울러 확인함으로써 무덤을 관리한 공동체 모습을 엿보게 한다.
"특히 유구遺構 중에는 9기의 이형 토갱異形土坑[이 역시 개소리다]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흙구덩이가 아닌 성물[聖物을 말함이 아닐까 하는데 한자가 병기되지 아니해서 性物인지도 모르겠다]을 세워 피장자[죽은 사람]를 위로하고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물의 흔적으로 추정되고 있어 당시 마한 사람들의 사후 세계관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하거니와
이 이형 토갱異形土坑를 해설하기를 "의식을 위해 나무기둥을 세웠던 흔적으로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구덩이로 유적마다 그 형태가 다름"이라 했거니와 한국과 일본고고학은 지들이 모르는 건 덮어놓고 이형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들 무덤에서는 소환옥小環玉, 곡옥曲玉, 수정옥과 같은 옥 종류 말고도 철도끼, 소형 괭이를 포함하는 철기류, 옹기와 기타 도기 조각이 많으 드러났다.
매장 시설 구조로 보면 초기에는 목관묘木棺墓[이 또한 거지 같은 말이다. 그 이후에도 목관은 주구장창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목관묘 아니겠는가 말이다]에서 시작해 영산강 유역 무덤 상징과도 같은 대형 옹관묘[대따시한 독을 관으로 쓴 경우]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잘 간직하고,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옹관은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남 지역 옹관 문화 발생과 전개 양상에서 중요하다! 이리 말한다.

이곳을 저네가 총평하기를 "이처럼 「함평 예덕리 고분군」은 다양한 규모의 고분이 한곳에 집중 분포하며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조성된 마한 묘제의 변천 과정과 당시 마한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하거니와 마한 운운하는 대목은 개소리로 치부하면 된다.
더러 개소리가 점철함에도 내가 굳이 소개하는 까닭은 그렇다고 저 무덤이 중요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발굴양상을 다각으로 포착한 도판들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