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한 장 차이인 나까마와 연구자 사이, 유홍준의 경우

이번 밥상 스캔들이 유홍준 개인으로서는 이례異例가 아니라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다시 말해 이번 번이 단순한 한 순간의 실수 혹은 일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엔 유홍준은 언제나 나까마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경우 나까마란 무엇인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다. 그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다.
그 욕심과 소유욕이 실제 욕망을 넘어 소유로 이어질 때 우리는 그를 나까마라 한다.
나는 그리 규정한다.
이 나까마도 다른 종류가 있다.
소유욕은 없다 해서 나까마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나까마 본래하는 의미는 중간 거간이다.
물건을 소개하고서 삥을 뜯는 일이 본래 나까마다.
유홍준이 이 두 번째 순수한 의미의 나까마인지는 모르겠다.
물건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지는 내가 직접 보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업계 종사자로, 언필칭 연구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그 어떤 경우건 순수한 연구자로 남으려면 그 두 가지 양태 나까마를 모두 멀리해야 한다.
저 유혹을 참지 못해 끝내 패가망신하는 사람으로 한둘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른바 자칭 연구자연 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저런 나까마의 유혹에 빠지고 실제 나까마로 가는가?
돈 욕심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의외로 사명감이 엇나간 사람이 쌔고쌨다.
사명감이란 무엇인가?
조급함이다. 나 아니면 이 물건이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절박감이다.
이 절박감을 좋은 말로 사명이라 하는데, 이때문에 없는 돈 있는 돈 다 털어먹어가며 물건을 사재기하기 시작한다.
나까마?
자꾸 나까마라 하니, 그런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직업 자체를 어찌 폄훼하리오?
내가 말하는 멸칭으로서의 나까마는 자칭 연구자연하면서 물건에 욕심을 내고, 그리하여 그것을 실제로 소유하고, 혹은 그 물건을 중개하고선 커미션을 떼어먹는 부류를 말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사명감으로 무장한 사람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 곧 연구자가 쌔고쌨는데, 이 친구들 온종일 하는 일이 경매 사이트 들어가서 뒤지는 일이다.
왜 그리하는가?
오직 나만이 저 물건 가치를 알아보며, 오직 내가 아니면 저 물건이 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절박감 때문이다.
연구자는 이 순간에 망가진다.
물론 그렇게 애써 긁어모은 자료들이라 해서 그걸 연구서니 논문이니, 책이니 뭐니 해서 공간하는 일로써 나는 나까마가 아님을 가장하곤 하지만,
또, 때로는 좋은 일 한답시며 그렇게 긁어모은 자료들을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기증하기도 하지만
천만에!
그렇다고 나까마가 연구자로 세탁될 수는 없다!
단언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연구자연 하고, 진짜로 연구자로 남고 싶거덜랑 나까마는 멀리해야 한다!
나까마로서 연구로 대성한 놈 없고, 대성할 수도 없으며, 죽고 나면 자식이 맨먼지 지애비 장서는 고물상에 다 넘겨버린다.
다시 유홍준으로 넘어가, 저 나까마 전형하는 길을 걸었다.
뭐 말이야 기증 운운하며 그 양태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유홍준은 명실상부,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까마다!
더구나 공직자로서 나까마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있으면 형사처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