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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총감2

조선총독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가? 1910년, 일본 메이지明治 43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에 따라 일본은 조선통치를 전담할 현지 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다만 시급성 때문에 기존 조선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官署를 존치하는 한편 기존 통감을 조선총독 업무를 맡겼다. 나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속한 여러 관청도 조선총독부 소속 관서로 간주되어 당분간 존치케 했다. 그러다가 제반 준비가 완전히 갖추었다고 판단한 한 달 뒤, 동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관제’를 공포하고 10월 1일자로 이를 시행했다. 공포와 시행이 하루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에 육군대신이자 자작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날짜로 이날 조선총독 겸임을 명받는 한편, 정무총감에는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임명되었다. 바로 이 날짜가 훗날 매년 10월 1일을.. 2024. 2. 29.
한국과 악연으로 얽힌 일본 관료,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 이준익 감독의 영화 을 본 이들이라면 1923년 관동대진재 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조선인 학살을 주장했던 콧수염 아재(김인우 분)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바로 당시의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 錬太郎, 1868-1949)다. 그는 아키타 현 태생으로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관료였다. 농상무성, 내무성의 여러 관직을 거치고 귀족원 의원, 내무대신까지 올랐다가 1918년의 '쌀폭동'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1919년 재기의 발판을 얻는다. 3.1운동으로 일제는 조선의 통치방침을 '문화통치'로 바꾸게 된다. 그때 일본 수상이었던 하라 다카시(原 敬, 1856-1921)가 미즈노에게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자리를 권유한다. 정무총감이라면 조선총독부의 2인자 자리로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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